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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0년 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이라크 자유 작전'을 개시했다. TV로 불길에 휩싸이는 바그다드 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는 전쟁의 의미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당시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라는 막연한 느낌만을 받고, 뒤에 펼쳐질 일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를 상상하지 못한 건 나 같은 초등학생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미국의 야심만만했던 꿈은 이라크에서 폭발한 엄청난 혼란에 잠식되었다. 후세인 정권 붕괴는 전쟁의 끝이 아니라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인으로 나뉘어 있는 이라크의 복잡한 종파·종족 분쟁이 후세인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폭발해버렸고, 이라크는 사실상 치안이 없는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미군 4500명이 죽었다. 이라크의 인도적 위기가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이라크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치게 되었다.

개전 후 8년이 지난 2011년이 되어서야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이라크에서 철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시리아가 위기에 처하며 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부에 걸친 국경 지역이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개전 11주년이 되었을 때 이 지역을 장악한 극단주의자들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이단 정권'들을 무찌르고 지구적 성전을 열겠다며 새로운 국가, ISIS를 선포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의 의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경쟁 세력들이 미국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이란은 종파적 유대 관계를 활용해 ISIS 토벌 작전을 진두지휘하며 이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러시아도 시리아 정부를 보호한다며 군사적으로 개입했고 이라크의 에너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석유를 받아 오며 다양한 인프라 건설 계약을 따냈다.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미국의 성전이 미국의 위신만 추락시키고 세계적 요충지인 이라크를 권위주의 세력에 더욱 밀착시키는 결과만 낳은 셈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실패는 '초강대국 일방주의의 종말'이라며 조소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국제적 개입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바닥을 치자, 반대로 미국에 대항하는 권위주의 세력들은 자신들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국제사회의 안정성에 도전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20년 전의 이라크 전쟁의 무수한 나비효과 중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미국은 왜 이라크라는 수렁에 들어가 모든 것을 헝클어 놓았는가? 근본적 원인은 모두가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만 전파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선교 의식에 있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드러난 것은 민주주의를 만능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일이 민주주의 정착의 가장 큰 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치안, 경제,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의 민주주의는 종파 갈등만 폭증시켰다.

물론 이것이 '현실'을 위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20년의 이야기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지켜내기에 얼마나 지난한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이식한다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도가 아니며, 선언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체제도 아니다. 전쟁의 참상과 극한의 빈곤, 독재를 거치며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한국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값진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기고자 :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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