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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서 별세한 故 제임스 그룬디

국가보훈처가 유엔군 6·25 참전 용사인 영국인 고(故) 제임스 그룬디씨의 유해가 부산 한 가정집에 보관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대전현충원에 임시 안치하기로 결정했다.

보훈처는 21일 "참전 용사 유해가 국가 시설이 아닌 곳에 보관되는 것은 예우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긴급히 임시 안치 조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우선 유해를 현충원에 안치한 뒤 주한 영국 대사관 등과 협의 절차를 거쳐 적절한 시점에 참전 용사 품격에 맞는 안장식을 치르겠다는 방침이다. 6·25 용사를 기리기 위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하는 국제추모 행사인 '턴 투워드 부산' 기념일(11월 11일)에 맞춰 안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고인은 지난달 10일 영국에서 91세로 별세했다. 그는 유엔기념공원에 전우들과 함께 묻히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따라 고인의 국내 수양 손녀인 A씨는 사비를 들여 고인의 유해함을 국내로 모셔와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다. 유엔군 참전 용사는 생전에 희망할 경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며 그 경비와 절차는 보훈처가 지원한다. 그러나 A씨가 고인의 법적 유족이 아닌 까닭에 안장 지원 논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보훈처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런 상황을 보고받고 "참전 용사의 유해가 개인 집에 모셔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유해를 대전현충원에 모셔 최고의 예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193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고인은 스물이던 1951년 2월부터 1953년 6월까지 2년 4개월간 영국군 27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시신 수습팀' 소속이었던 그는 전국 격전지를 돌며 전우의 주검을 찾아 수습하고 부산의 묘역에 안장했다. 그렇게 그가 최전선에서 부산으로 옮겨 묻어준 주검만 90여 구였다. 그는 시신을 묻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다. 내가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복무를 마치고 귀국했던 그는 1988년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이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30여 년간 매년 자비를 들여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그는 '한국을 사랑한 참전 용사'로 불렸고, 2019년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 남구로부터 명예 구민 패를 받았다. 최근 2년간 코로나로 방한하지 못했던 그는 암 투병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지난 5월 힘겹게 부산을 다녀갔다. 그는 오는 10월 5일 부산 시민의 날에 초청돼 명예시민증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두 달 앞둔 지난 8월 세상을 떠났고, 70년 전 자신이 묻어줬던 전우들 곁에서 영면하게 됐다.

고인은 2010년 4월 7일 자 본지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 당시 하루도 끔찍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온전한 시신이 드물었다. 굶어 죽은 사람이나 어린아이들 시신에는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도 악몽을 꾼다. 아내는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일곱 형제자매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가족이라곤 손녀 둘이 전부다. 그래도 부산에 수백명의 전우 가족이 있어 마냥 외로운 건 아니다. 난 영웅이 아니다. 내가 묻은 전우들이 영웅이다." 기고자 :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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