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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규탄 더 거세진 유엔 총회

제77차 유엔(UN)총회 일반토의가 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했다. 코로나 감염이 줄어들면서 3년 만에 완전한 대면 행사로 개막한 이번 회의에선 기후변화, 난민 급증과 인권침해 등 각종 글로벌 현안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특히 지구촌을 극심한 안보, 경제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날선 비판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이날 주요 발언자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2월 24일부터 제국주의와 식민 시대의 복귀를 목도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침략과 영토 병합 행위로 우리의 집단 안보를 깨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 제한 시간인 15분의 두 배인 30분간 주먹으로 연설대를 치면서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지킨다며 침묵하는 나라들은 러시아 제국주의에 공모한 것"이라며 러시아를 격정적으로 비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제국주의의 귀환은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평화 질서 전체에 대한 재앙"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전쟁과 제국주의적 야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자기 나라까지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간인 살해와 자포리자 원전 공격에 대해 "오늘의 희생자는 우크라이나지만, 러시아 제국주의가 성공한다면 내일은 또 어떤 나라가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위협 속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는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잔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침공을 용납하거나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했다. 루마니아·리투아니아·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 정상들도 "불법적 전쟁"이라며,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했다. 지난 4월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퇴출 표결 때 기권했던 카타르 정부 대표도 이 전쟁이 불러온 세계 에너지·식량 위기 등을 거론하며 휴전을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협상에 중재자로 나선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양측이 위기에서 탈출할 품위 있는 길을 제시하기 위한 합리적인 외교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지속적인 평화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에 기반을 둬야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밖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수를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회원 193국 중 141국의 찬성으로 통과될 때보다 비판이 더 거세졌다.

반면 러시아가 군사·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신흥 개도국에선 전쟁 비판에 온도 차가 느껴졌다.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며 "아프리카는 역사의 짐으로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고, 더는 신냉전의 온상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러시아에 대한 일방적이고 선별적인 제재가 최선은 아니다"라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전쟁으로 각국에서 생활비가 치솟고, 신뢰가 허물어지며, 불평등이 폭발하고 사람들이 다치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거대한 기능 고장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자협의체도 지정학적 분열이란 덫에 빠졌다"며 "G20은커녕 협력이나 대화가 부재한 'G너싱(nothing)'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유 진영의 리더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날 예정된 연설을 하루 뒤로 연기해 유엔총회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첫날 참석하지 않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정상은 아예 불참하자 "글로벌 리더십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뉴욕 시내에서 양자 회담을 갖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 행동을 비난하고 중국발 위협에 공동 대응하자고 약속했다고 양국이 밝혔다.

유엔 측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실내 마스크 착용 지침을 고수했지만, 각국 대표단이 총회장 안팎에서 마스크를 벗는 바람에 보안요원들이 이를 제지하는 등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번에 150여 국 정상급 인사가 뉴욕을 찾아 경계가 삼엄해지면서 유엔본부 일대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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