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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도서 구매 늘어난 중년층

"법은 만인(1만명)에게만 평등한 게 아니고,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잖아요?"(1일 국회 종합정책질의 중)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문해력(文解力·글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능력) 저하 문제는 항상 1020 젊은 세대의 일로 이해됐다. 2020년 광복절에 토·일·월 사흘간의 연휴가 생긴 것을 두고 '사흘의 난'(사흘을 4일로 오해)이 벌어졌을 때, 올해 서울 한 카페가 "예약 오류로 불편을 끼쳐 '심심(甚深·깊은 마음의 표현)한 사과'를 전한다"는 것에 "난 이 상황이 지루하지 않다"고 되받아친 사람들이 생겼을 때를 떠올려보라. 학교에서 국어·한자 교육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문해력 저하가 젊은 세대의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 50대 국회의원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뜻의 만인(萬人)을 특정 숫자로 좁힌 것은, 문해력이 단순히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님을 축약해 보여주는 사례였다.

실제로 문해력 저하 현상은 중년과 더 밀접한 모습을 보인다.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의 최근 연구 결과(2016년)를 보면, 글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언어 능력'은 16~24세에서 32국 중 4위였다. 이후 낙차가 크다. 45~54세 구간에선 평균 이하로 떨어지고, 55~65세에선 하위권으로 중년의 문해력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해력 위기'를 느껴 관련 도서를 찾아 읽는 4050 중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예스24 도서 판매 집계에 따르면, 1월부터 8월까지 어휘력·글쓰기·맞춤법 등 문해력 서적을 구매한 독자 중 절반 이상(51.2%)이 40대(33.8%)와 50대(17.4%) 중년층이다. 문해력 베스트셀러 역시 어휘 공부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언어 생활 '심화 편'이 많다. 올해 가장 많이 판매된 문해력 도서인 '우리말 어감사전'(유유출판사) 역시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알려주는 '학습서'가 아닌, 언어에 담긴 미묘한 어감 차이를 다루고 있는 책.

제목부터 성인 독자를 겨냥한 책들도 있다. '어른의 어휘력'(2위·앤의서재)은 성인의 어휘 학습 방법을 다루고 있고, 비슷한 제목의 '어른의 문해력'(4위·블랙피쉬)은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이 대상이다. 문해력 관련 도서 출간도 증가 추세. 2018년 63종이었던 문해력 관련 도서는 올해 116종(1~8월 기준)까지 늘어났다. 예스24 손민규 인문MD는 "최근 몇 년간 문해력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직장 생활을 하며 책과 멀어졌던 중년들이 관련 도서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 차별과 혐오 문제에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쓰는 단어에 '편견이 담겨있진 않을까' 돌아보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문해력 도서 인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중년층을 필두로 문해력 수요가 늘자 출판사들의 인문서 기획 풍경도 바뀌었다. 4분기에만 문해력 도서 2권을 출간한다는 민음사의 신새벽 인문사회팀장은 "최근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면서 문해력 도서 기획을 염두에 두는 편집자가 많아졌다"고 했다. '문해력'이 담는 내용도 넓어지고 있는 추세.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기획한 쌤앤파커스 최현정 편집자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문해력 도서는 글쓰기나 시험에 도움이 되는 '도구' 성격의 책이 많았지만, 최근엔 글과 말의 행간을 읽어내는 '소통 능력'으로 초점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심한 사과 사건' 같은 '문해력 참사' 배경엔 어휘력 부족 문제도 있지만, 그보단 상대방의 대화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 언어 사용 방식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서혁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 세대에 걸쳐 독서량과 문해력이 떨어졌는데, 성인들의 문해력 교육은 개인 책임으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엔 문해력이 단순히 읽고 쓰는 것에서 벗어나 글쓴이의 의도를 추론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만큼, 독서 동아리 등을 통해 다양한 세계관을 교환하는 '사회적 독서'가 중요하다"고 했다.

[표] OECD 국가 중 한국의 언어 능력 순위 기고자 : 윤상진 기자
본문자수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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