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이동순 시인 '근대가수 열전' 펴내… 일제강점기 가수 55인 삶·노래 조명

"BTS의 성공은 옛 가수들이 마련한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식민지 시대 노래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인이자 대중가요 연구가인 이동순(72) 영남대 명예교수는 7일 "과거의 역사가 씨앗이 됐기에 오늘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대중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는 점에서 대중가요와 가수들의 본질적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제강점기 가수 55인의 삶과 노래를 담아 '한국 근대가수 열전'을 출간했다.

이 교수는 "식민지 시대 노래들은 단조 위주로 구성된 비극적 세계관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고복수의 '타향살이' '짝사랑' '사막의 한' 등이 그런 곡이다. 이 교수가 식민지 시대 노래에 빠진 것은 그의 유년기와도 관련이 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생후 10개월 만에 병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이후 이난영, 장세정, 황금심 등 식민지 시대에 활동한 여가수들의 노래가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는 "여가수들의 목소리가 어머니 목소리라 생각하며 빠져들었다"고 했다. 노래를 즐기기만 하다가 신문, 대중 잡지, 음반 등을 통해 옛 가요들을 공부했다.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좋은 가요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에 파고들었다. 700쪽짜리 책 '한국 근대가수 열전'은 그렇게 나왔다.

그는 "팽팽한 음색으로 새로운 민족 국가 건설이라는 해방 후의 새 목표를 잘 표현해낸 현인이야말로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에 위치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식민지 시대 가수들이 초창기 한류의 바탕을 제공했다"고도 했다. 그는 "가수 이난영은 '오카 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 순회 공연을 다녔고, 이규남은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음반을 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각에서 식민지 시대 노래를 폄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민요와 판소리 위에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인 엔카, 미국의 재즈와 블루스 등 여러 요소가 혼합돼 식민지 시대 노래가 형성된 것"이라며 "그중 엔카적 요소만 부각해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우리 가요가 미숙한 상태에서도 해방 이후까지 나름의 전통성을 계승해온 것은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라며 "문화는 다양한 역사와 경로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더 너그럽고 포용적 관점에서 식민지 시대 가요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방 후 가수 윤복희, 패티김 등이 연결고리가 돼 오늘날까지 한류의 전통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인적인 소망'이라며 "BTS가 옛 가요 한두 곡을 편곡해 자신들의 레퍼토리에 포함시킨다면 어떨까요?"라고 했다. 그는 "옛 가요가 담는 좋은 가사와 정서를 BTS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낸다면 정말 놀라울 것 같다"고 했다. 기고자 : 박정훈 기자
본문자수 : 145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