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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야, 너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외친다. 실제로 안 변한 것인지 아니면 상당히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도 변했고 산천도 변했는데 사람이라고 변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서로 변한 것이 없다고 말을 덕담처럼 주고받는 순간 한국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희열일 것이다.

서양인들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을 때 "와우, 너 많이 변했구나!"라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한다. 코흘리개였는데 이제 완전 멋진 성인이 되었구나, 혹은 너 성공했구나, 이런 축하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변화란 대체로 긍정적인 어떤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에게 변화란 다소 복합적이고 양가적인 면을 가진다.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발전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아는 너, 바로 너 맞지? 그런 뜻이다.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잊혔던 세계를 훌쩍 소환시키는. 너의 모습, 함께했던 시간과 장소가 불려 나오면서 우리를 삽시에 그 시절로 돌려놓는 이 순간은 우리에게 유의미하고 가치 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야, 너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과거에 나누었던 유대감, 우리가 하나라는 믿음, 그 아름다웠던 세계가 한순간에 파괴되는 감정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한국의 많은 예술 작품이 이 파괴의 아픔과 사라진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다.

외국 학자들이 한국 드라마나 소설의 특징으로 지적하는 플래시 백, 회상 장면 반복은 한국인들만이 가진 독특한 심성 구조를 잘 보여준다. 삶의 여정에서 놓치기 싫은 합일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한국 문화의 순금 부분을 이룬다. 지구상에서 가장 급격한 근대화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이러한 아픔과 그리움에 대해 예민하다. 이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을 잘 보듬고 표현하는 예술 작품에서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을까 싶다. 기고자 : 이영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3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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