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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면 가을로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갈 것이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솔숲을 따라 걷는 길을 상상해보자. 피서객이 떠난 모래밭에 수런수런 다가오는 바닷물을 보면서 걸어보자. 삽시도 둘레길이 그런 길이다. 쌀농사도 짓고, 염전도 있는 작지 않은 섬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서쪽 모래밭은 여름에 여행객이 많이 찾고, 동쪽 해안은 마을 어장이며 물새들의 쉼터다.

술똥마을에서 밤섬마을로 가는 길에서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 몇 마리를 확인했다. 삽시도도 갯벌에는 바지락, 낙지, 민꽃게, 피뿔고둥, 해삼 등이 많이 서식한다. 이 중 바지락은 삽시도를 대표하는 소득원이다. 하루에 세 차례 배가 다니기에 이른 아침에 들어와 길을 걷고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룻밤 머물며 섬마을에서 가을 노을을 만끽해보길 권한다. 당일치기든 하루 숙박을 하든 바지락칼국수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 바지락칼국수는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지만 삽시도 바지락은 '푸드 마일리지 제로'다.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던 터라 바쁠 것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이른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간단하게 먹고 일어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 막걸리를 주문했다. 왜 시원한 국물을 맛보면 술이 생각날까. 칼국수를 담은 그릇의 반은 바지락 차지다. 집 앞에서 캐서 잘 해감해둔 바지락이다. 국물이 시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배를 타고 차를 타고 시장을 거쳐 밥상에 오르는 육지의 바지락과 다르다.

충청도 갯벌은 바지락이 잘 자라는 혼성 갯벌이 발달했다. 특히 삽시도를 포함해 안면도, 황도, 원산도 지역의 바지락이 좋다. 주민들은 섬에서 숙박하는 여행객을 위해 일부 바지락 밭을 체험 어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신에 섬에서 정한 그릇과 도구만을 이용해야 한다. 이때 양식하는 해삼이나 전복은 채취할 수 없다. 삽시도는 어촌 체험 마을로 지정되어 안전하게 안내를 받으며 체험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도시와 어촌의 교류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다음 날 보령으로 나가는 아침 배에 바지락 자루가 10여 개 실렸다. 기고자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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