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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쟁쟁해 내 이름이 불릴 줄은 몰랐다. 오스카 트로피(무게 3.85㎏에 높이 34㎝)를 받을 땐 신생아를 품에 안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수상 소감을 수어(手語)로 표현해야 하는데 손에 트로피가 들려 있는 게 문제였다."

배우 트로이 코처(54·미국)는 두 손을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던 순간을 돌아볼 때였다. 수어는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격정적이었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인 그가 내년 7월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를 앞두고 홍보 대사를 맡아 방한했다. 6일 장충동 한 호텔에서 만난 코처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를 한국이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세계적으로 농인은 7000만명에 이른다. 인권 향상, 질 높은 교육, 수어에 대한 인식 증대와 함께 정부와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수어 통역사가 두 명 배석했다. 한국 수어와 미국 수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면 한국 수어 통역사, 미국 수어 통역사를 차례로 거쳐 코처에게 갔고 그의 답은 역순으로 기자에게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해 받은 인상은?

"첫 방한인데 본의 아니게 태풍과 함께 왔다(웃음). 거리에 온통 한국어만 보여서 내 모국어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호텔방에서 TV를 틀었더니 자막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영어가 아니었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시상자는 한국 배우 윤여정이었다.

"영화 '미나리'를 봤기 때문에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배우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수어를 쓰는 나를 배려해, 윤여정이 오스카 트로피를 대신 들어줬다. 그 덕에 수상 소감을 밝힐 수 있었다. 트로피와 샴페인을 양손에 들고 수어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큰 상이 내가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였다. 윤여정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제대로 전하고 싶다."

―수상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에 영화 오디션에 숱하게 참여했는데 농아인 배역은 비장애인에게 가곤 했다. 그런데 '코다'가 아카데미를 수상(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하자 여러 영화사에서 '농아인 역할을 맡아달라'며 연락을 해온다. 꿀맛이다. 나로 인해 세계 농아인들이 희망을 키우고 꿈을 쟁취했으면 좋겠다."

―어느 인터뷰에서 '침묵은 힘이 세다'고 말했는데.

"농아인 중에도 개그맨이 있다. 침묵의 세계도 그 자체로 견고하고 완전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각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비장애인들이 듣던 즐거운 음악이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농아인은 아무렇지도 않다. 1년 365일 침묵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을 잘 때 제일 편안하다(웃음). 그게 바로 비장애인과 농아인의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자."

―1930년대 무성영화엔 소리가 없었다.

"당시는 농아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영화에 접근했다. 하지만 영화에 소리가 들어가자 농아인은 소외됐다. 영화 '코다'가 한 일은 그래서 뿌듯하다. 수십년 동안 분리돼 있던 농아인과 비장애인을 만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배우를 꿈꾸는 농아인 소년이 앞에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나.

"나중에 돈 많은 여자를 만나거라(웃음).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인데, 농담이다. 이렇게 말해주겠다. 나를 보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도전하면 그 꿈에 닿을 수 있단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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