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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 안되게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저녁 tv화면에 비친 정원식총리의 모습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회담성과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은 보는 이들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남북회담은 서울과 평양 혹은 명승지에 국한할 것이 아니고 같은 민족끼리니 서로가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알기위해 경향각지 어디서나 하면 좋겠다. 연일 호화찬란한 연회로 이어지는 외화내빈의 회담보다는 한가지라도 민족의 염원을 풀어주는 실속있는 회담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지난해 8월초 정 총리가 처음으로 평양회담에 가기 직전 "총리님 평양회담에 가시거든 우리같은 사람들 한번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조상님들 묘소나 돌보고 오게 해주세요"라고 한적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박한 소원이요 마지막 소원이다. 친척과 어린시절의 고향친구를 만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이런 것들이 허용되면 북측에도 기본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인정할 수 있어 다른 문제들도 풀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 50년에 걸친 이런 소박하고 한많은 소망과 염원은 개방 절대불가라는 북측의 일관된 주장앞에 무참히 무산됐다.

북한측은 이 회담결과에 희색만면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측이 끈질기게 요구해온 팀스피리트 훈련 철폐,미 핵철거 등이 그쪽에서는 상응한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을 상대해서는 어림도 없던 것이 그쪽의 구미대로 이루어지니 저쪽의 상투적 어투를 빌린다면 남조선 아이들을 시키니 말을 하기도 전에 지레짐작하여 다 하는 것이라고 망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독의 경우 나토와 바르샤바기구의 연례 군사훈련은 상호 참관단을 파견하는 등 일련의 변화는 있었지만 결국 동구의 변화와 통독이 거뜬히 이루어졌다.

물론 대규모 군사훈련과 생화학무기,핵무기 등이 남북한 전역에서 완전히 사라질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벌써 북한은 몇년전 핵고폭실험을 끝냈다는 믿을만한 소식도 들려온다. 아직 제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국내-국제적으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쉽게 핵개발을 포기할까. 동시사찰 국제감시단을 받아들인다고는 하지만 시간벌기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는 것이나 아닐까. 포기한다면 남북회담보다는 국제적 압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정교한 미사일까지 대량수출하고 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을 포함해 우리 주변 국가들은 다 핵강대국들이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한 큰 신호긴 하였지만 우리만 비핵국 심지어는 핵재처리까지 포기한다고 세계에 선언하고 나섰으니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을까.

국론수렴 지혜를

혹시라도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데 패기와 공명심에 찬 어떤 그룹이 밀실에서 이런 모험적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런 국가의 운명과 수천만의 생사와 직결되는 중대사는 사전에 국회와 전문가와 논의하고 국민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서 실행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 정권이 선거에서 약체로 출발했지만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임기 끝까지 가야한다는 소신을 교계내외에 분명히 하였다. 협정서 그것이야 지난날의 경험들로 보아 저쪽에서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휴지화 시켜버릴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정 총리가 평양에서 계속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핵사찰을 강경하게 요구한 것은 썩 잘한 일이다. 양보만 한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큰 우환을 부를 수도 있다.

중국의 주은래,등소평 등은 젊었을 때 자유분방한 파리 등 유럽에서 몇년씩 유학을 하였다기에 지금껏 심한 몸살을 앓아가면서도 계속 개방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 북한 최고지도층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계정보에 정통한 권위 있는 소식통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명하는데 우리는 너무 순진하며 성급한 것이 아닐까. 통일 그것은 우리가 독일에서 본 바와 같이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쌍방에서 세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어 거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회담은 어떤 모양으로든 계속하되 서둘지 말아야 한다.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론을 수렴해야 한다. 선린 우방들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고립을 자초하거나 지난날과 같이 경제적 큰 타격을 가중시켜서는 안된다.

동양에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다. 중국이 먼저 완전히 개방되고 북한에 큰 변화가 올때 가능할 것이다. 이런 개방과 변화도 그리 먼 훗날의 일은 아니겠다. 통일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의 주민들 특히 젊은층이 북한과 남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 세계의 흐름을 아는 것이겠다. 사람은 근본적인 것에서 속았다는 것을 알면 모든것을 끝장내게 된다. 경제투자는 정밀한 핵사찰과 이산가족 고향방문,인권문제 등의 진척여하에 상응해야 한다.

북한변화 눈앞에

우리의 경제가 몹시 불안하다. 1백억불 수출흑자에서 1백억불 적자로 삽시간에 곤두박질했다.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통일을 염원하는 그만큼 내실있는 준비를 해야한다. 통일의 첩경은 경제발전이다. 또 민주주의의 착실한 정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땅에 떨어진 도덕성과 인간성 회복이 시급하다. 이런 일들이 제대로 되면 남북회담도,교류도,통일도 순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렵고 지리한 과정이다. 반짝하는 선풍적 인기나 정략보다는 은인자중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아쉽다. <신부 전 가톨릭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