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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는 종이호랑이 로 결국 전락하고 말 것인가,아니면 다시한번 잠에서 깨어난 사자 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미 팬암여객기 폭파사건의 용의자 인도문제와 관련,리비아측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진영이 요즘 벌이고 있는 줄다리기는 이에 대한 해답을 곧 줄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0년대는 기세등등

미국은 리비아측이 최근 이들 용의자들을 제3국에 넘기겠다고 했다가 결정을 번복하자 크게 분노,30일 유엔 안보리에서 리비아에 대한 제재결의안 통과를 강행할 태세이다. 미국측이 구상하고 있는 대리비아 제재안은 민간항공기 운항금지 무기류 및 항공기 판매금지 리비아 외교관 추방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걸프전 이후 한동안 얌전하게 있던 카다피가 다시 날뛸 수 없도록 족쇄를 굳게 채우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6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무혈쿠데타를 주도,20년이 넘게 리비아를 통치해오고 있는 카다피는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이슬람 사회주의와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미국 등 제국주의세력 에 대한 투쟁을 부르짖은 그는 제3세계의 새로운 지도자를 자처했다. 서방측은 이 때문에 그가 테러집단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던 카다피가 다소 고분고분 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 4월 미군 폭격기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기습폭격한 이후부터였다. 하마터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을 뻔 했던 그는 보복을 맹세했으나 그것은 말 뿐이었다. 한마디로 미국의 과감한 행동 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그후 카다피가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해온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리비아의 경제력을 전적으로 받쳐주고 있던 원유수출이 86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리비아 경제제재조치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유가도 80년대 중반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원유 증산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나,그것도 석유생산시설에 필요한 미국부품이 추가로 공급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다피가 좀더 얌전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걸프전이었다. 미국 주도하의 연합군측이 이라크에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후,세계는 미국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들어섰다. 자신을 지원하던 소연방마저 해체된 상황에서,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다음으로 혼내줄 상대로 자신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안 카다피가 지레 몸조심을 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주변의 아랍국가와도 관계개선을 이루는 등, 세계의 말썽꾸러기 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구소 해체로 몸조심

그러나 미국은 집요했다. 지난해 가을이후 미국과 영국은 지난 88년 영국 로커비상공에서 폭발해 2백70명의 인명을 앗아간 미 팬암여객기 폭발사건의 범인 2명이 리비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리비아측에 이들의 인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엔 완강하게 인도를 거부해오던 리비아가 지난 23일 전격적으로 이들 용의자 2명을 아랍연맹에 인도키로 했다고 발표함으로써,결국 카다피가 미국이란 거인 앞에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했었다.

카다피가 그런 결정을 번복하고,미국과 영국이 자국을 위협해 용의자를 인도받으려 한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은 마지막 판세뒤집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과는 별도로 프랑스는 지난 89년 니제르상공에서 폭발,1백71명이 사망한 프랑스여객기 폭파범으로 또다른 리비아인 4명을 지목하고 있는데,이와관련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카다피의 의도도 엿보인다.

과거보다 행동 순해져

그러나 현재 벌이고 있는 게임도 과거에 그가 보인 행동에 비하면 엄청나게 순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과거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국제기관을 인정,그곳에 사건심리를 요청한 것부터가 그렇다. 또한 이 사건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직접 리비아를 방문하거나 특사를 파견해주도록 요청한 것도 예외적인 일이다.

게다가 미국주도의 서방측이 리비아에 대해 군사행동을 감행하거나 제재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해줄 것을 국제사법재판소측에 부탁한 것도 과거의 카다피와는 다른,일종의 미 공포증 에 시달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이용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