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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기간중 일어난 에피소드다.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가 빡빡한 일정에 따라 헬기로 강원지역의 정당연설회를 순회하던 어느날,날씨가 워낙 좋지 않자 기장은 헬기를 조종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육두문자가 섞인 호된 질책속에 헬기를 띄울 것을 명령했다. 결국 이 헬기는 대관령에서 거센 바람에 밀려 몇번 곤두박질치기도 하는 목숨건 사투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당시 동행했던 인사들은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당의 당직자들은 평동당사 입주이래 지난 3개월여간 일요일도 없이 일에 내몰렸다. 새벽 6시에 당무회의가 열리는 통에 근무시간도 이 시간부터 밤12시까지가 보통이었다. 선거가 끝난뒤 첫 일요일인 29일에야 전당직자가 하루를 쉴 수 있었다. 국민당이 어쨌든 이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국민당 조직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당은 이미 알려진대로 정 대표 개인재산의 힘으로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 쓰인 자금뿐만 아니라 중앙당 운영비 등 창당이후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5백억여원은 모두 정 대표의 사금고 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당은 정 대표가 1백% 대주주인 독특한 정당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그룹 계열사에서 차출된 상당수 당직자들이 마음속으로는 소속회사로 복귀를 열망하면서도,정 대표 지시에 복종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조직의 전부를 장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정당이라면,이른바 공당으로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당대표직을 향한 선의의 경쟁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정당도 아니며 민주정치도 아니다. 궂은 날씨속을 돌파하고 있던 헬기속에서 정 대표를 제외한 당직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국민당은 당운영이 지나치게 실리위주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후보 공천과정에서도 공천대상자의 전력이나 성향보다는,투자한만큼 표를 얻을 수 있느냐는,지극히 비즈니스적 기준이 상당부분 적용됐다. 실리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실리를 구하는 방법이 새정치 를 부르짖은 당의 모습에 걸맞느냐는 지적인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 찾아가 민원같은 걸 호소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정치권출신 한 당관계자의 고백은 국민당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제3당으로 부상한 국민당은 이제 수권정당 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대대적인 조직개편 작업에 곧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당을 특정인의 청와대행만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데 그쳐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거산 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