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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람의 길' 펴낸 한승원
동화·수필·시 넘나들며 써

전남 장흥군 해산토굴(海山土窟). 소설가 한승원(85·사진)이 1997년 도시를 떠나 고향에 지은 이 작업실은 조용한 날이 없다. 그의 분신들이 찾아와 말을 건다. 늙은 나비시인·율산·지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자신과 닮았으면서 다른 존재들을 마주하며 작가는 묻는다.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신작 소설 '사람의 길'(문학동네)은 분신과 같은 인물들의 입을 통해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최근 전화로 만난 작가는 "늙어가며 신선같이 살고 싶은데, 쥐새끼처럼 간요(奸妖)한 것이 제 속에 들어 있어서 사람을 괴롭힌다"며 "분신과 제 관계를 통해 사람의 길을 확실하고 교묘하게 찾아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길'은 1968년 등단한 원로 소설가의 삶과 문학이 하나의 여정처럼 연결된 소설이다. 동화·시·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이다. 가령 소설에서 광복 직후 열 살 무렵의 '한승원'은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에게 거짓말한 날을 잊지 못한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내가 최후에 남겨야 할 말 아닌/ 말/ 하나가 거기 있어서입니다.'라며 자신의 시의 뿌리를 찾는다. 작가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말년에 쓴 봉은사 판전(版殿) 현판을 보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글씨다. 저도 그처럼 아주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자전적 소설과 구도(求道) 소설의 양면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작가는 6·25전쟁·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를 풀어내며 '야만의 세상'을 비판한다. "우리들은 삶을 살면서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인간의 길을 잃어버립니다. 도시 문화는 자연을 가둬두고 있으며, 정치에는 진영논리가 지배하죠.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공생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판의 화살은 작가 자신도 피해갈 수 없다. '율산'이란 그의 분신이 해산토굴에 찾아와 '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대목은 소설의 별미다. 작가는 "찰리 채플린이 그랬듯, 제가 저를 희화화시켜 사는 재미가 있다"며 "제 속에 있는 간사한 쥐새끼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허위의 삶을 풍자했다"고 했다.

한승원은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그는 "이번 소설에 자연친화적 삶이 특히 강조되는데, 딸(한강)이 권해준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자연친화적인 것이 우주적인 것이라는 삶의 믿음을 늙어가면서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한강의 작품에 대해서는 "딸을 비롯한 대개의 젊은 작가들이 저와 같은 이전 세대를 이미 뛰어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딸이 정말 효도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매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이번 소설을 '최후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언제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씁니다. 저는 살아 있는 한 시와 소설을 쓰고, 시와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입니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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