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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이 신진서(22)와 커제(25)의 10번기(番棋)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지난주 중국 바둑협회에 '신커 대결 제안서'를 발송했고 현재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물밑에서만 떠돌던 '신커 대결'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기원은 제안서에서 양국 1인자 대결이 두 나라 바둑계 발전과 바둑 세계화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①10번기 ②대면(對面) 대국 ③상금 승자 독식 ④상금 규모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등 4항을 제시하고 협의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세부 조항은 두 대국 당사자 의견을 100% 반영한 것이다. 지난달 농심배 승리 후 신진서가 "커제와 벌이는 10번기를 언제든 환영한다. 다른 말 나오지 않게 대면 대국으로 결판 내길 원한다"고 했고, 커제는 "대국 장소는 어디건 좋고 상금은 승자 독식으로 하자"고 받아친 바 있다.

대국자와 한국기원 등 세 단계를 넘어섰지만 중국 바둑협회의 결단이란 고비가 또 남아 있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한국 기사들과 벌인 주요 대결에서 패배를 거듭해왔다. 2014년 치른 이세돌·구리 10번기 패배도 뼈아픈 추억이다.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승산'이 매우 중요하다.

커제는 신진서에게 통산 11승 7패로 앞서 있다. 하지만 범위를 최근 2년으로 좁히면 정반대 흐름이다. 신진서가 세계 메이저 대회서 3회 우승하는 동안 커제는 한 차례 우승 추가에 그쳤다. 중국 측이 여전히 자신만만한 커제를 믿고 양자 대결을 허가할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두 나라 모두 대회 비용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바둑계 최고의 블록버스터인 만큼 흥행도 성공하리란 판단 때문이다. 중국엔 이세돌·구리전을 후원한 헝캉(恒康) 같은 바둑 애호 대기업이 여럿 있다. 한국에선 이미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승자 상금 규모가 어느 선에서 결정될지도 관심사다. 단일 바둑 행사 역대 최다 우승 상금은 이세돌이 구리와 치른 10번기 때 챙긴 500만위안(약 8억8000만원)이다. 이세돌 대 알파고전(2016년) 때는 100만달러(약 12억원)가 승자 상금으로 걸렸었다.

빡빡한 국제 일정은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신진서는 잉씨배 결승 3번기를 앞두고 있다. 두 기사 모두 9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연말엔 춘란배 8강전서 만난다. LG배 삼성화재배 농심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난가배가 창설됐고 갑조리그도 빠질 수 없다.

만약 중국이 신커전을 거부하는 쪽으로 결론 낸다면 일정과 장소 문제를 구실 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의지만 있으면 못 할 이유가 없다. 이세돌·구리 10번기처럼 9개월씩 끌 것 없이 휴양지 같은 곳에서 열흘쯤 격리해 집중 소화하면 된다. 양국 모두 국내 기전은 3년째 대면으로 치르고 있다.

커제는 농심배서 대패한 뒤 신진서를 가리켜 "과연 사람인가. 알파고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상대에 대한 찬사 같았지만 뒤이어 "인공지능 일치도가 너무 높다" "화장실에 자주 다녀왔다"는 등 부정행위를 의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매듭은 묶은 쪽이 풀어야 한다. 신진서는 '누명'을 벗기 위해 10번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맨주먹 대결' 요청에 중국 측이 내보일 다음 수(手)가 궁금하다. 기고자 :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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