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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미국 시골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숙사 대신 미국인 가정에서 사는 홈스테이를 택했다. 영어를 빨리 배우려는 생각이었지만, 살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미국집 생활 덕분이었다.

아저씨 짐은 법무부 공무원이었고 아주머니 비비언은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중년 부부로, 두 사람 모두 한 번씩 이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방 네 개에 화장실 세 개인 집에 살면서 적적함을 달래려고 외국인 하숙생을 들이는 부부였다.

두 사람은 매일 아침 오트밀 시리얼을 먹었다. 다른 메뉴는 없었다. 그건 마치 골판지를 물에 불린 것 같은 맛이어서, 먹을 때마다 오징어젓이라는 반찬이 있는 한국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생각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각자의 점심 도시락으로 잼이나 땅콩 버터를 바른 샌드위치와 사과 한 알씩을 쌌다. 나에겐 냉장고를 뒤져 알아서 싸가라고 했다. 눈 뜨면 따뜻한 밥과 국이 차려져 있던 우리 집이 그리웠다.

저녁은 항상 집에서 셋이 함께 먹었다. 단순한 규칙이 있었다. 밥 차리는 사람은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짐이 밥을 하면 비비언이 설거지를 했고 비비언이 상을 차리면 뒷정리는 짐이 했다. 나는 그때까지 우리 집을 포함해 한국의 어떤 집에서도 아버지가 밥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그런 얘기를 두 사람에게 했다. 한국에서는 아버지는 물론 남자들은 부엌 근처에 가지도 않는다고. 그때 짐이 말했다. 글쎄, 비비언이 살림을 도맡았다면 모를까, 우리 둘 다 일을 하니까 살림도 반반씩 하는 게 공평하지 않아?

살림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나에게는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말이었다. 살림은 여자의 영역이며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남자는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우리 집이 그랬고 다른 집들도 그랬으며 TV 드라마 속 모든 집 풍경이 그랬다.

그렇지만 짐의 말이 옳았다. 여자가 밥을 했으면 남자가 설거지를 하는 게 공평하다. 남자가 청소를 했다면 여자는 빨래를 맡아야 공평하다. 우리 집이 어떻고 남의 집도 다르지 않은 건 중요하지 않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나는 미국 가정집에서 살림을 배웠다. 살림을 하면 공평하고 즐거워진다는 걸 알았다. 주말 저녁이면 지하 세탁실에서 짐, 비비언과 함께 모여 마른 빨래를 개켰다. 그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 30년 전 일인데도 엊저녁 일인 것 같다. 기고자 :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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