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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장미, 다른 손엔 진… 도로시 파커를 위한 건배

프랑스에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도로시 파커가 있다. 술을 좋아한 작가가 누가 있었지라고 생각하면 일단 이렇게 두 분이 떠오른다. 글에서 유난히 술기운이 풍기는 분들이라고 해야 할까?

도로시 파커는 술 중에서도 진(gin)을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뉴욕에 있는 마담 투소 박물관에 있는 도로시 파커 인형은 진을 들고 있다. 도로시 파커 인형 옆에 있는 피츠제럴드 인형은 그저 소파에 기대어 있는데 말이다. 피츠제럴드도 술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인데 도로시 파커에게는 못 미쳤던 것 같다.

도로시 파커는 불우한 삶과 알코올중독, 그리고 신랄한 위트로 유명한 20세기에 살았던 미국 작가다. 국내에 번역된 게 없어서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나 그녀가 남긴 말들은 좀 알고 있고, 이게 꽤 웃기다. 이를테면 이런 거. 자기가 죽으면 묘지에 이렇게 새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글자가 보이면 당신은 너무 가까이 온 거다'라고.

역시 그들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도로시 파커의 묘석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사진을 찍은 사람을 봤다. 더 가관인 것은, 도로시 파커의 무덤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플래스크(휴대용 술병)에 담은 진을 홀짝거리며 한 손에는 장미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부러움을 살 만한 장면이다. 아무래도 그 장면은 진지한 술꾼들일 그들이, 진의 상징인 그녀를 추모하는 가장 최적의 방식으로 고안한 게 분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이건 너무 멋지지 않나? 각자의 진을 마시며, 무덤에 장미를 바치고, 도로시 파커를 생각하는 것으로 하는 추모라니. 이런 복이라니!

이들은 누구인가? 무덤가에 모인 이들 말이다. '도로시 파커 소사이어티'라는 그녀의 팬클럽 회원으로, 그녀를 안장하기 위해 모였다. 2021년 8월의 일이다. 도로시 파커는 어떤 이유에선가 죽은 지 54년 동안 제대로 묻히지 못했다고 한다. 기이한 일이다. 진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것만큼이나 그럴듯한 묘비명을 많이 남긴 걸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쿨한 묘비명을 남기고자 그렇게나 많은 묘비명을 창안했는데, 어떤 묘비명도 새기지 못한 채 그녀의 혼령은 떠돌았던 것이다.

결국 선택된 묘비명은 1925년에 지은 시 '사랑하는 숙녀를 위한 묘비명'이다. 그녀를 위해 빨갛고 싱싱한 장미를 놓아두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파커의 팬들은 본인의 묘비명이 된 그녀의 시에 나오는 구절을 따라 장미로 화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 한 모금으로도. 사진 속의 장미는 아주 싱싱하고, 붉어 보인다.

도로시 파커 진을 구하고 싶어졌다. 도로시 파커 진이 정말 있다. 뉴욕 디스틸링 컴퍼니에서 만든 것인데 국내에도 들어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언젠가는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도로시 파커 칵테일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레시피는 이렇다. 보드카와 쿠앵트로, 레몬즙을 3:1:1로 넣고 블랙라즈베리 술을 0.5 넣으면 된다고 한다. 이 네 가지 재료를 셰이커에 넣고 흔든다. 그러고는 위에 샴페인을 붓는다.

술을 즐기고, 글도 좀 쓰고, 또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나의 도로시 파커들과 도로시 파커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고 그러는 건 딱 질색이지만 도로시 파커의 이 시는 읽고 싶다. "술 마시고 춤추고 웃고 거짓말하고/ 사랑해라, 밤새 휘청거리며,/ 내일이면 우린 죽을 테니까!/ (그런데 아, 안 죽었네?)" 기고자 : 한은형 소설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70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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