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자본금이 단 한푼도 없는 한국은행은 무슨 돈으로 감사원이 내라고 요구하는 과태료를 납부할 것인가.

얼마전 감사원의 감사결과 5백만원 이내의 과태료 부과처분을 받은 한국은행은 재경원에서 과태료 납부통지서가 날아올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과태료를 내라고 끝까지 우기면 『불만은 많지만 내긴 내겠다』는 것이 한은(한은)의 비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인 한은이 법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낼만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선례도 전혀 없어 섣불리 내겠다고 말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이 과태료를 한번 내면 또 그런 요구가 잇따를 것이고、 그같은 선례의 누적은 결국 중앙은행의 「시중은행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는 한은이 국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라는 사실. 또 상업적 영업활동을 하지않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일시 발생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재산이지 한은재산이 아니다.

한 간부는 『자본금이 없는 법인체로서 과태료를 낼수있는 돈은 없고、 낸다면 결국 돈을 찍어 납부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한은이 국민의 돈으로 과태료를 내는 기묘한 결과를 낳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은은 통화관리를 하면서 적자가 나면 언제나 돈을 찍어서 써왔다. 한국은행법상 주식 회사나 다른 법인체처럼 증자나 외부차입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한은도 연간 3조1천여억원의 예산을 쓰고있고、 비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경비지출을 위한 영업외비용 예산도 있다. 하지만 한은법인체에 부과되는 과태료를 낼만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한 금통위원은 『법적인 논쟁을 떠나 국가기관끼리 과태료를 부과하고 부과당하는 모습은 좋지않다』며 『중앙은행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과태료 납부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명령 제11조는 실명제위반 행위에 대해 재경원장관이 5백만원의 범위내에서 과태료를 부과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실명제 위반행위(예를들어 주민등록증 미확인행위)인지는 긴급명령에 규정되어 있지않고 재경원장관 업무지침에 나와있다.

이때문에 한은 구미사무소직원이 가짜수표를 받을때 업무지침에 규정된 주민등록증 검사를 하지않은 것은 업무지침 위반행위이지 대통령긴급명령 위반행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 시중은행의 실명제 위반범죄는 대부분 가차명 계좌를 둘러싼 범법행위였고、 주민등록증 등 인물대조 미확인으로 인한 징계는 거의 없었다. 이때문에 시중은행들도 이번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 강희철(강희철)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헌법기관(감사원)과 법률기관(한은)의 권한、 긴급명령과 장관업무지침간의 법적효력 차이、 두 국가기관의 권위 등이 얽히고 설켜있어 매우 복잡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번 과태료 부과사건은 재경원의 최종결론이 어떻게 나든 감사원과 한은 양측에 큰 후유증을 가져다 줄 것같다. < 송양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