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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으로 일부서 역전현상… 서민경제 직접 타격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서 만난 화물트럭 기사 윤모(57)씨는 "1989년부터 트럭을 몰았는데 요즘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제주도에서 물건 싣고 배 타고 건너와서 서울까지 운행했는데 7t 트럭 기름(경유) 값이 평소보다 20만원 더 들었다"면서 "기름 값·뱃삯·주차비·할부금 빼면 손에 쥐는 돈이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푸틴발(發) 원자재 가격 폭등이 서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과 비슷한 수준까지 오르면서 화물차 업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유류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가는 L(리터)당 1919.5원이다. 2008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휘발유(2000.8원)보다 81원 정도 싸다. 지난 10년(2012~2021년) 휘발유·경유 가격 차는 평균 L당 192원이었는데, 2009년 1월 이후 13년 만에 최소로 좁혀졌다.

지난 10년간 휘발유 가격의 88% 정도에 머물던 경유가 최근엔 96%까지 오른 것이다. 최근 경유가 국제 시세가 크게 오른 데다 유류세 인하 효과도 휘발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휘발유·경유 가격이 역전 현상을 보인 건 2008년 6월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나라 주유소 기름 값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경유는 휘발유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유에 붙는 세금은 휘발유의 70% 정도여서 통상적으로 경유가 더 싸다.

제철용 석탄과 같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제조 업계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 제조 업체 관계자는 "철강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중소 업체는 납품할수록 손해를 보고, 자동차·조선과 같은 대기업도 철강재 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유값 폭등에 화물차 업주 패닉

최근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국제 시세가 올 들어서만 69% 폭등해 휘발유(46%)보다 많이 오른 탓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산 경유는 EU(유럽연합) 전체 경유 수입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국제 경유 시장에서 비율이 높다. 독일의 경유 판매 가격은 올해만 53% 폭등했다. 핀란드·체코·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40% 안팎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류세 인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종과 관계없이 유류세를 20% 인하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로 휘발유에 부과하던 세금은 L당 164원, 경유는 116원 줄었다. 휘발유가 경유보다 더 큰 인하 혜택을 보게 된 셈이다.

경유 가격 급등은 화물차 운전자와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1t짜리 경유 트럭은 푸드트럭·다용도탑차 등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가 생계형 창업에 주로 활용하는 운송 수단이고, 택배 업계도 대부분 경유 트럭을 활용하고 있다. 화물 트럭 운전자 강모(59)씨는 "한 달 기름 값이 70만~80만원 늘었다"며 "이럴 거면 아예 운행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화물 운전자의 평균 지출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42.7%다. 국내에서 운행 중인 차량 약 2600만대 중 경유차는 38%가량인 1000만대에 달하고 이 중 화물차는 330만대다.

◇철강재 값 인상에 제조 업계는 비상

철강 제품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철강 수출국인 러시아가 제재를 받으면서 국내외 철강재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국내 열연 유통 가격은 지난 25일 t당 135만원으로 지난달 25일보다 15만원 올랐다. 국내 철강사들은 다음 달에도 열연·냉연 가격을 t당 10만원가량 더 올릴 계획이다.

국내 제철용 석탄의 16%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수입 루트가 끊긴 것도 국내 철강재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주산 석탄 가격은 지난해 5월 t당 110.7달러에서 이달 658.8달러로 495% 폭등했다.

철강 가격 인상은 제조 업계에 원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사들은 자동차 업체에 상반기 강판 가격을 t당 최소 20만원 인상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형 세단 기준으로 1대당 900㎏의 강판을 사용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소 제조 업체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인 철강사에서 철강재를 구매한 뒤 중간재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데, 철강재 가격이 오른 만큼 납품 단가는 오르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격 비교 / 국내 열연 강판 유통 가격 기고자 : 김강한 기자 김아사 기자 박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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