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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당신의 명품' 코너는 함순자씨의 사연을 꼽았습니다.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입어 낡고 닳은 가구의 모습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우리네와 닮아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삼층장이라는 물건이지만 이는 곧 그의 어머니였고, 시대의 무게였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함순자씨는 수필가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삼층장'이라는 글은 2011년에 발간한 그의 수필집 '푸른계절의 약속'에 실린 글의 일부를 요약한 글이라고 솔직히 말씀합니다. 함순자 작가의 글 곳곳에서 당신 어머니의 짙은 숨결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듯합니다. 삼층장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된 함 작가의 '글'이 누군가에겐 또 '명품'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최보윤 편집국 문화부 차장

우리집 안방, 눈에 잘 뜨이는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화류(樺榴) 삼층장은 내 곁으로 온 지도 30여년이 지났다. 낡고 닳아 헐렁한 문짝들은 맞물리지도 않고 받침대도 동강 나서 접착제로 붙여놓았지만 내겐 더 없는 명품이고 유품이다. 자두 빛깔의 영롱함은 해묵은 연륜을 자랑하듯 곱고 단아하다.

엄마는 내리 딸만 둘을 낳은 후 아들이 태어났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氣)가 충천하신 아버지가 엄마한테 내린 보상이 화류삼층장이었다. 해마다 이월 초엿새 오빠 생일이 다가오면 재깨미(기왓장을 곱게 빻은 가루)로 장롱 모서리와 서랍 손잡이 그리고 장롱 여닫이의 백통장식을 윤이 나도록 짚수세미로 닦는 것이 연중행사였다.

6·25전쟁은 부모님의 희망인 아들을 앗아갔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스물세 살의 오빠가 인민군의 기준에는 자본주의에 물든 부패한 부르주아였다. 잔인한 그들의 손에 푸른 젊음은 값없는 죽임을 당했다. 엄마의 삼층장 장식은 녹이 설어가고 윤기를 잃었다. 청청하고 부유하던 우리 집은 풀 한 포기 피지 않는 사막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오빠를 빼어 닮은 나를 아들 대신 보면서 산다던 엄마는 언니들과 동생을 제쳐놓고 나한테 삼층장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셨다.

자라면서 본대로 지금은 편하게 사포(砂布)로 백통장식에 얼룩을 걷어낸다. 호두를 으깨어 천에 싸서 자주 장롱을 매만질 때마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리움을 헤아릴 수 있고 구슬처럼 주렁주렁 꿸 수 있다면 얼마큼의 무게일까. 장롱에 얼굴을 대어본다. 엄마 곁에 가면 치마폭에서 풍기던 엄마냄새, 그 훈훈한 짚불 냄새가 난다. 자두 빛이 감도는 맑은 화류장에 내 얼굴이 비친다. 오빠 모습 같기도 하고 엄마도 닮아 보인다. 본문자수 :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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