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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희 문

관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정확하게 골라낸다. 결과는 언제나 기막힌 선택이다. 한국영화,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쏟아지고 저마다 「이 영화야말로 최고」라고 포장하지만 관객들은 그중 어느 것이 진짜 볼만한 영화인지 아닌지를 찍어내듯 가려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투표로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골라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포 선라이즈」. 관객이 찾아낸 영화다. 물론 잘 만들기도 한 영화다. 주연 배우의 이미지는 상큼하고 대사는 여유로우면서도 우아하다.

연출도 깔끔하고 단정하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영화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눈길을 끌만큼 색다른 영화는 아니다. 풍경화같은 사랑이야기-영화가 즐겨다루는 소재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은 이 영화에 반응한다.

해가 뜨면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예정된 이별을 앞둔 짧은 만남은 그만큼 소중하고 간절하다. 기차에서 눈길이 부딪힌 미국 청년과 프랑스 아가씨는 비엔나 거리에서 해뜨기 전까지 추억을 만든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는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두 사람은 함께 걷는 발자국 수가 많아질수록, 조금씩 속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더해질수록 마음도 가까워진다. 비엔나 거리는 사랑의 무대가 되고 가로등에 젖은 달빛은 안개처럼 두사람을 감싼다.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의 만남. 영화 속에서나 있을 듯한 멋진 로맨스 그 자체다.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복고풍 올드패션이지만 거친 폭력이나 땀젖은 알몸, 번쩍거리는 특수효과를 내세운 요란한 영화들에 비하면 맑은 샘물같은 영화이고 사랑의 모습도 오염되지 않은 순결과 청순함의 원형처럼 달콤하고 간지럽다.

너무 쉽게, 빨리, 뜨겁게 「사랑」으로 치닫는 세태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간절함과 두근거림은 아름다움이고 그리움이며 위안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비포 선라이즈」는 관객이 찾아낸 영화다. < 영화평론가·상명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