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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후보 연극 '러브레터' 주인공 정보석·하희라 인터뷰

무대 위 남녀는 관객을 향해 말할 뿐,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지 않는다. 남녀가 하는 말은 모두 서로에게 보낸 편지, 엽서, 카드의 내용. 일곱 살부터 쉰다섯 살까지, '앤디'와 '멜리사'는 편지를 주고받지만 서로의 마음은 엇갈리고, 조금씩 나이 들어 간다. 두 사람은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채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과 오일쇼크 등 굵직한 역사의 마디를 통과한다.

내달 4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하는 연극 '러브레터'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지는 설렘, 메마른 가슴도 쿵쾅쿵쾅 다시 뛰게 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 '앤디'와 '멜리사'를 맡은 배우 정보석(63)과 하희라(55)를 최근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났다. 1990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미국 백인 중산층 정서에 정통한 극작가 A.R. 거니(1930~2017)의 희곡. 30여 언어로 번역 공연됐다. 마틴 신, 윌리엄 허트, 크리스토퍼 워컨, 캔디스 버건 같은 명배우들이 이 무대에 섰다.

정보석은 화가 마크 로스코 이야기 '레드' 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연극을 해왔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아보니 성장하는 나이대마다 남자 주인공 '앤디'의 생각이 그 시절 내 생각과 딱딱 잘 맞더라. 그래서 바로 출연을 결정했는데,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관객은 재미있지만 배우는 너무 힘든 작품이더라"며 웃었다. 50년 가까운 세월,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두 인물의 일생을 주고받는 편지 약 90통으로 표현하는 건 이 베테랑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희라는 반대로 여주인공 '멜리사'가 자신과 정반대 성격이어서 끌렸다. 2년 전 초연과 재연 무대에도 섰던 그는 "어릴 때부터 방송 생활로 늘 조심하면서 살았고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는데,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멜리사가 나와 너무 달라서 굉장히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하희라는 "무대에 둘이 있지만 때론 모노드라마 같다. 무대 위 편지 사이의 간격, 시간의 여백을 메우는 건 관객의 상상력"이라고 했다. "관객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걸 상상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꼭 보물찾기하는 것 같죠." 정보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편지로 오가는 이야기라는 표현 방식을 지키면서도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는 희곡이죠. 연습을 할수록 작가가 천재 아닌가 싶어요, 하하."

부모님 안부도 휴대전화 메신저로 묻는 시대. '손 편지'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까. 하희라는 "전혀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했다. "제 딸이 돌돌 만 작은 종이에 '엄마, 힘내세요' 써서 작은 유리병에 넣어 화장대에 올려놓고 갈 때가 있어요. 그걸 펼쳐 읽으면 눈물이 쏟아지죠. 정성스러운 편지에 감동받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보석은 "젊은 사람은 젊은 대로,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대로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세월을 투영하고 자기 기억을 반추하며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대를 떠나 사람이 지닌 원천적 감정에 대한 극이니까요. 아마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당장에라도 손 편지를 쓰고 싶어질걸요?"

두 배우의 목표는 관객이 앤디와 멜리사라는 무대 위 인물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것들을 함께 보게 되는 것. 무대 위에 펼쳐지는 두 인생의 많은 순간, 장소, 변화들을 배우처럼 관객도 함께 겪게 되길 바란다. 앤디와 멜리사는 잃어버렸던 세월의 조각들을 다시 찾아내 맞춰 본 뒤에야 그것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이 연극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소중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극 '하이젠버그',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 등 감각적인 사랑 이야기로 정평난 김민정 연출가가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S석 5만5000원, R석 7만7000원. 공연은 4월 27일까지.

[그래픽] 연극 '러브레터' 주연 정보석·하희라 기고자 :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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