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전국에 골프장이 4곳뿐인 우크라이나에도 골프 선수가 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열다섯 살 미카일로 골로드는 자부심 넘치는 국가대표다. 우크라이나 주니어 선수권에서 4번 우승했고, 지난해 US 주니어 아마추어 대회에 우크라이나 선수 최초로 출전했다.

그는 이달 초 키이우의 집에서 미국 골프 매체와 인터뷰했다. 종일 공습 경보가 울려 대고, 가까이서 하루 50번쯤 폭발음이 들리지만, 적막이 오면 더욱 두렵다고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러다가, 걱정은 이미 충분히 했다면서, 골프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날마다 온종일 연습해도 피곤하지 않아요. 샷 훈련이 제게는 마치 명상 같거든요. 경기할 땐 코스와도, 다른 선수들과도 싸우지만 결국은 나 자신의 생각과 맞서 싸워요."

현실은 잿빛인데, 소년의 마음속은 온통 초록이었다. 아직 물과 음식, 전기와 와이파이가 있어 다행이라며, 온라인으로 구할 수 있는 역대 모든 메이저 대회 영상을 섭렵 중이었다. 시간 때우기가 아니다. 승자는 무엇 때문에 이겼는지, 패자는 왜 졌는지 꼼꼼히 분석해 정리했다. 미래를 대비하는 동시에 현재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골프 대회는 모두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열려요. 꿈같지만 또한 현실이죠. 그러니까 이뤄질 수 있는 꿈이란 뜻이죠."

깊은 밤 지하실로 대피하러 내려가면서 소년은 두 가지 이야기를 남겼다. "전 세계가 우리 상황을 듣고 보고 도와주세요. 러시아는 민간인과 아이들까지 해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오는 7월 US 주니어 아마추어 대회에 꼭 다시 나가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작년엔 경험이 부족했지만, 올해는 정말로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생존을 넘어 소년이 그리는 간절하고 생생한 미래가 많은 이의 가슴을 두들겼다. 소년의 소셜미디어로 쏟아진 기도와 격려 속에는 유명 코치 데이비드 레드베터의 이메일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끔찍한 상황을 접하면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레드베터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 플로리다주 아카데미 전액 장학금과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당장 여러 골프 단체를 움직여 탈출을 도울 후원금을 마련했다.

부모는 키이우를 벗어나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 여겼으나, 아들의 인생을 건져낼 기회 앞에서 결단을 내렸다. 거대한 탱크들 틈바구니로 이틀을 내달려 헝가리 국경에 닿았다. 출국이 금지된 아버지와 국경에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한 뒤, 어머니가 계속 차를 몰아 부다페스트 공항까지 갔다. 런던을 경유해 마침내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이 모든 게 꿈인 것 같다"며 눈물짓던 어머니는 그러나 딱 사흘만 소년과 미국에 머물렀다. 아들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휴대전화를 만들어주고 학교를 알아보고는 남편과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와 함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가슴 미어지는 이별. 소년은 "힘들지만 빨리 극복하고 싶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모든 게 곧 끝날 거고, 얼마 안 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한 달째. 참혹한 도시 풍경과 날마다 발표되는 사상자 숫자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한 생명은 그저 '숫자 1'이 아니다. 누군가가 모든 것을 걸어 지켜내고 싶은 무한한 꿈과 미래와 가능성이다. 며칠 전 소년은 PGA 투어 대회장을 찾아 가장 좋아하는 선수 로리 매킬로이를 만났다. "언젠가 여기서 뛰고 싶어요. 내가 크면 골프장을 짓고 주니어 아카데미를 세워서 우크라이나 골프를 위대하게 만들 거예요.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기고자 : 최수현 스포츠부 차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80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