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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사람이 돈이 좀 생기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본인은 전혀 지각하지 못하지만 남보기에 무척 오만해지는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남에게 폐를 끼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게 인지상정이다. 국가간의 관계에도 그런 일은 곧잘 생긴다.

우리가 보는 요즘의 일본이 꼭 그렇다. 일본인으로서는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는 대아시아주의 였지만 이 일본인 특유의 이상의 실현과정에서 한-중 양국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아시아인들이 고통과 수난을 감수해야 했는지 모른다. 미-영 등 연합국들의 힘에 의해 일본인들의 아시아주의 가 좌절됐을 때 그들은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 하지 않을듯 해보였다. 보기에도 초라할 만큼 그들은 겸손해보였다.

1945년에서 50년대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60년대에도 일본은 트랜지스터 세일즈맨 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겸허하게만 보였다.

그 겸허하고 얌전하던 일본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그들 스스로도 지나치게 팽창하는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해 방위비를 gnp의 1% 이내로 묶은것이 1976년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일본의 군사비는 연 5~6%씩 착실히 늘어났다.

구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의 군사력이 축소되고 있는데도 일본은 91년부터 5년간 연평균 4조엔(약 24조원) 이상을 군사비로 쓰고 있다. 재작년부터 엎치락 뒤치락 하던 평화유지활동(pko) 법안도 곧 성립될 전망이며,이에 따라 일본군의 해외파병도 합법화될 것이다.

1백여년전부터 실현하려다가 반세기 남짓해서 좌절된 일본인의 대아시아주의 는 지금 조용하게 되살아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정권 담당자가 일본의 파병을 요청하고,파병용 항공대를 설치하는 등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군사적 역할은 확실한 실체로 부상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일본은 조심스럽게 야금야금 축적해왔다. 72년의 닉슨-모택동 회담이나 90년의 노태우-고르비 회동처럼 대륙적 기질 의 충격과는 달리,그 나름의 대전략을 섬나라 특유의 섬세하고 정밀한 추진방법으로 한 단계씩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자위대가 만약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요청대로 폴포트파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파병된다면 이는 현행 일본헌법에 정면충돌 된다. 일본국내의 모든 합리화와 정당성 부여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다수 일본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선택할 길이 아니다. 일본의 현명한 선택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