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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대로 세상에 보기 드문 신기한 일, 특별한 사연이 소개된다. 1998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는데 숱한 개편에도 폐지되지 않고 장수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 프로그램에 나갈 사연을 하나 정해보라고 하면 두 말 필요 없다. '규제 개혁'이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진 것도 1998년이다. 올해가 25년째다. 그동안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앞세우고, 대통령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큰소리쳤지만 강산만 두 번 바뀌었을 뿐이다. 늘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이니 신기한 일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갈 자격은 충분하다.

2016년 성균관대 로스쿨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해 3월까지 15년간 유엔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을 지낸 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을 교수로 초빙하려다 포기했다.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법시험 수석, 사법연수원 수석을 한 '수석 3관왕'으로 유명했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고 부장 판사로 근무하다 2001년 ICTY의 첫 한국인 재판관으로 선출됐다. 대량 학살 혐의로 기소된 라도반 카라지치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한 '세기의 재판'을 마치고 퇴임했는데 자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15년간 쓴 판결문이 2600페이지나 되지만, 최근 5년간 쓴 논문이 대한변협 로스쿨 평가위원회에서 정한 기준에 못 미쳤다. 그는 "한국의 현실이 이렇구나 하는 걸 배웠다"고 주변에 말했다. 규정, 문구, 점수에 묶여있는 규제들이 이런 일을 만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요틴(단두대)처럼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한 뒤로 규제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규제 덩어리'를 공격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뽑아내야 할 '전봇대'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표현까지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샌드박스(모래 상자)'였다. 아이들이 모래를 갖고 놀듯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모래 상자는 모르겠고 모래 지옥인 줄 알았다"는 말이 돌았다.

2021년 우리은행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본점 지하 2층 주차장에 있던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환전소'가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샌드박스로 마음껏 해보라"고 했지만 현금 보관 금고의 안전 기준과 보안 규정 등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니 공항 근처 주유소나 식당 등이 아니라 지하 주차장에 처박히게 됐다. 1년간 환전 건수는 0건이었다. 샌드박스 허가는 지난 3년간 총 632건이나 되는데 43%(271건)는 시작도 못해보거나 중단됐다. 관련 규제를 없애는 제도 개선까지 성공한 것은 10건 중에 2건에 불과했다. 또 꼬리는 뱀이었다.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고,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기업을 옥죄고,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계속 쥐고 있으려는 규제가 개혁 대상이다. 이걸 모를 대통령이 없었을 텐데 제자리걸음만 한다. 문제는 의지다.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고, 관심이 줄어들면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정권 초기에는 뜨겁다 내리막길에는 식어버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에 '규제 혁파'라고 썼다. 윤 당선인은 얼마 전 경제 6단체장들을 만나 기업의 발목에 채워진 규제들을 '모래주머니'라고 했다.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강골 검사였던 대통령이 빼든 칼은 다를까? 다르기를 바란다. 정부의 무능은 국민과 기업의 부담이다. 기고자 : 이진석 경제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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