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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부쩍 회자되는 단어 가운데 정경분리 라는게 있다. 새삼스런 말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그 의미가 혼돈스러운 적도 드문것 같다. 쓰는 사람에 따라 그 뜻과 용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나 여당이 정경분리를 외치면 그것은 국민당과 현대그룹을 겨냥한 것이라 보아 거의 틀림없다. 기업인이 정치에 나서는 것에서부터 현대가 국민당을 지원하는 것이 정경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국민당이나 현대도 "정치는 정치고 기업은 기업인데 왜 각종 금융외압으로 현대를 고사시키려 드느냐"며 정경분리를 주창한다. 기업과 정치의 분리 는 최근 경제 5단체장이 낸 성명서에도 등장했다.

재계는 이번 총선에 발목이 빠져도 단단히 빠져있고 어느 선거때 보다 더 빠졌다는 느낌이다.

국민당이라는 변수가 하나늘어 이해를 따지는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와 관련지어 국민당을 장외 에서 바라보는 재계시각은 크게 보아 두 갈래인 것 같다.

실패할 경우 재계위상이 전반적으로 실추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시각과 재계 정치예속 이 심화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거꾸로 국민당이 그럴싸한 성공을 거둔다 해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대그룹에 대한 정치적 보호막이 생기면서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현대그룹 업종과의 상충정도에서부터 총수간 개인적 친소에 따라 때로는 심각한 여파가 덮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급기야 그룹에 따라서는 국민당후보 당선저지에 발벗고 나서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와중에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주영씨 정계진출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회장은 되도록 표현을 자제하려 애쓰는 눈치였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단어들 속에서 구원 과 경계심 을 깔끔하게 감추지는 못했다.

김 회장은 기존 정치권에 대해서도 "지도자 빈곤" "정권투쟁만 하는 우물안 개구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21세기 정치지도자들을 키우는 정치연수원을 세우겠다고 했다. 한해의 절반 이상을 해외여행으로 보내는 김 회장 눈에 정치권은 우물안 개구리 일 수밖에 없다는 자괴를 당연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 역시 정치연수원 같은 것을 만드는 것으로 정치판에 한발 걸치게 되면 결국 기업들은 정경혼재의 진흙탕속에서 서로 싸우게 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오태진 경제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