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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 지음｜창비｜388쪽｜2만원

이들은 출근하면 매일 아침 투구를 쓰듯 헤드셋을 쓴다. 화장실은 허락받고 다녀온다. 4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흡연실에서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자리로 돌아온다. 흡연실 재떨이는 '한숨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상담 중에는 한숨 소리가 고객에게 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꾹꾹 눌러둔 한숨은 흡연실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내뿜어진다. 이것은 콜센터 상담원의 일상이다.

코로나 이후 콜센터는 더 많은 전화를 감당하고 있다. 비대면 시대가 됐고,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 문의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구로공단, 이제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일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은 '현대판 여공'인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인류학자인 김관욱(45) 덕성여대 교수는 '사람입니다, 고객님'(창비)에서 콜센터의 노동조건과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그는 '콜순이'(콜센터 상담사)의 형편은 여공들보다 나을 것 없음을 풍부한 현장 연구와 인터뷰로 드러낸다.

과거 구로공단 여공들은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각성제를 반강제로 먹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철야했다. 21세기 콜센터 상담원(여성이 98%에 달한다)은 담배를 피운다. 이 중 흡연자는 연구에 따라서 26~37% 수준으로 나타난다. 한국 성인 여성 평균 6.7%의 네다섯배다. 왜 피우냐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편이다. 한 상담사는 "여기서는 흡연이냐 아니면 뛰어내리느냐 두 가지밖에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저자는 "구로공단 굴뚝을 계승한 것은 건물 옥상 상담사들의 담배 연기였다"고 썼다.

그는 콜센터 업무 환경을 '양계장'에 빗댄다. 4월인데도 에어컨을 켠다. 춘곤증에 졸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창문은 늘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콜만 열심히 받으면 되는데 창밖 풍경을 볼 필요는 없다. 체온과 시각마저 높은 생산량(콜 수)을 위해 통제하는 것이다. 양계장은 닭이 달걀을 최대한 많이 낳도록 축사의 온도를 조절한다. 항생제를 섞어 닭이 병균에 내성이 생기게 만들 듯, 사무실에 흡연실을 구비해 자유로이 흡연할 환경을 조성한다.

콜은 언제나 있다. 그래서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 손을 들고 허락받아야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단체 채팅창에 'ㅅ'(손들었다는 의미)라고 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부채를 들어야 화장실에 갈 수 있게 한 곳에서는 상담사 200명이 부채 6개를 두고 경쟁한다. 방광염은 이들이 흔히 앓는 직업병이다.

기계처럼 일해야 하지만 인간미를 잃어서는 안 된다. '미소 띤 음성'은 지상 가치다. ARS 기계음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콜 수와 통화 내용은 모두 중앙 프로그램에서 파악된다. 같은 콜센터 직원들을 성과로 줄 세워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니 동료는 없고 경쟁자만 남아있다. 콜센터 상담원과 대화할 때만 삼국지 속 여포처럼 사나워지는 '진상' 고객님은 화룡점정이다.

대부분 하도급 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콜센터 상담사는 기업과 정부기관의 총알받이 역할도 해야 한다. 시민들은 정부기관이나 기업에 전화를 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리인'인 상담사는 민원인을 끝까지 막는 벽이 되어 폭언을 견뎌야 한다. 혹여라도 상담사 선에서 민원인 불만을 수습하지 못하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넘기기라도 하면 혼쭐이 나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따라온다. 담배 다음은 신경안정제인 것이다.

'감정노동'을 하는 콜센터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이니 친절하게 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저자는 '감정노동'이라는 프레임은 해결책이 아닌 문제의 방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들의 몸이 통제·관리되는 방식이며, 성벽 안의 누군가를 위해 대신 총알받이를 해야 하는 현실에 있다. 저자는 "식약처 공적 마스크는 10분 설명하고 상담원을 투입시켰고,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내용은 교육 자료만 배포하고 끝냈다"고 했다. 부정확한 상담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겠으나, 욕을 먹는 것은 콜센터 상담사다. '디지털 현모양처'가 되도록 미소 띤 음성과 생동감 있는 어미 구사를 강요당하는 것 역시 문제다.

넘길수록 한숨이 나오는 책이다. 콜센터 상담사가 겪는 문제는 크건 작건 현대인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의 극단적 표출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미소 띤 음성으로 말하고, 대리인으로 남에게 사과하고, 번아웃으로 우울증에 걸릴 때까지 일하는 무수한 한국 '산업역군'의 삶 말이다. 책 제목을 되새기며 살 필요가 있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그래픽] 산업화시대 여공과 21세기 콜센터 직원 기고자 :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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