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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분주히 움직이며 전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지난 1월, 아이돌 그룹과 팬 등의 관심사는 한 앨범의 판매량에 쏠려 있었다. 당시 화제의 초점은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미니 4집인 'Midnight Guest'가 발매 후 일주일 동안 집계되는 초동 판매에서 10만장을 넘길 수 있는지 아닌지였다. 이 이슈가 어째서 중요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돌 음반 시장의 문법을 알 필요가 있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구태여 음반을 구매할까? 이는 음반이 음악을 듣기 위한 상품이 아니라, 스타를 향한 '팬심'을 인증할 수 있는 '굿즈(goods)'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룹 간의 경쟁 구도를 동력원으로 삼는 아이돌 산업에서 음반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어느 순간부터 음반의 초동(발매 후 일주일) 판매 기록은 팬덤의 규모를 알려주는 척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문화 시장 불변의 법칙이 하나 추가된다. "남성은 절대 여성만큼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초동에서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음반이 보이그룹에는 9개나 있는데 걸그룹에는 한 개도 없다. 걸그룹 초동 최고 기록은 블랙핑크의 68만9000장이다. 여성은 걸그룹 앨범도 많이 구매하지만, 남성은 보이그룹에 대체로 무관심한 것을 고려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이런 소비자 특성으로 인해 보이그룹이 팬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야 했었다면, 걸그룹은 히트곡을 중심으로 '대중성'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산업의 오랜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아이돌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크게 변했다. 2020년에 걸그룹 아이즈원과 트와이스가 30만장의 초동 기록을 보여준 것이 시작이었다. 걸그룹 시장에서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10만장이라는 기록은 이제는 인기 걸그룹을 증명하는 것으로 통한다.

프로미스나인의 10만장 기록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미 데뷔 5년 차였기에 신인으로서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이들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세련된 도시 여성상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음악, 영상 등을 성공적으로 엮어냈다. 이런 프로미스나인의 '개혁'에 크게 호응한 소비자층이 청년 남성층이었다는 점이 몹시 흥미롭다. 이 집단이 그동안 문화 시장에서 절대 지갑을 열지 않기로 악명(?)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팬덤 시장으로의 변모는 새로운 도전 또한 제기한다. 팬덤 간에, 또 팬덤 안에서 상이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부딪치면서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성장하는 걸그룹 시장에서 청년 남성층이 새로운 구성원으로 계속해서 유입되는 최근의 조류도 마찬가지다. 이미 걸그룹 시장에서는 여성과 해외 소비자층이 선호하는 '걸크러시(girl crush·여자가 봐도 멋진 여성)' 콘셉트를 둘러싼 공방이 다양한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집단적 논쟁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문화 전쟁'의 전사로 정립하는 현상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체성에 기반한 팬덤 갈등이 문화 시장을 넘어 다양한 정치,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이대남'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 콘텐츠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었다. 이런 선례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고 젠더 갈등이 사그라들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진짜 전선'에서 싸움은 이제야 시작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고자 :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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