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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영화팀이 예측하는 아카데미상 D-7 감상법

'기생충'도 '미나리'도 없지만, 올해도 금빛 오스카 트로피는 어김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일주일 뒤인 28일(한국 시각)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조선일보 영화팀이 부문별 유력 후보작들을 총정리한다. 현재 CGV 등 복합 상영관과 씨네큐브 광화문, 그리고 넷플릭스 등 OTT에서도 아카데미 후보작들을 상영하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최종 승자는 당일 결정되겠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여우조연상 부문 시상자는 지난해 '미나리'로 이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배우 윤여정(75)이라는 점. 올해 오스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피아노'의 여성 감독이 만든 파격·반전 가득한 서부극

영국 명탐정 '셜록 홈즈'가 미 서부의 거친 카우보이로 변신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감독상을 비롯해 최다 부문(12개) 후보에 오른 '파워 오브 도그'는 파격과 반전으로 가득하다. 인기 드라마 '셜록'과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45)가 미 서부 목장주 필 역을 맡았다.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따지고 보면 영화의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출을 맡은 제인 캠피언은 1993년 '피아노'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뉴질랜드 여성 감독. 여성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감독이 거칠고 황량한 카우보이의 세계를 그렸다는 사실도 화젯거리였다. 대립과 갈등 일변도의 기존 서부극과는 달리, 캠피언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유려한 자연을 영화에도 담았다. 여기에는 미국이 아니라 감독의 고국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는 영화적 트릭이 숨어 있다.

영화는 미 소설가 토머스 새비지(1915~2003)의 장편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원작에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 교차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제 카우보이는 그들이 보는 활동사진과 마찬가지로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는 구절이 그렇다. 흡사 서부 개척이 끝난 시대의 서부극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영화에도 장르적 트릭이 있다. 형제 갈등을 묘사한 초반 설정은 '에덴의 동쪽', 남성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그린 중반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닮았다. 하지만 결말로 향하면서 사건과 주제, 주인공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과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 그런 의미에서 구약 시편 22편 20절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에서 가져온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제목이다. 지난해 베네치아 영화제 감독상을 시작으로 올해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는 고지를 향해서 예정된 수순을 착착 밟아왔다. 이변이 없다면 올해 작품·감독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일 것 같다.

[각본상]

아홉살 소년이 본 혼돈의 도시

질서 정연해 보이는 세계도 사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얇은 빙판 위에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시련을 겪고 있지만 1969년에는 다른 이유로 북아일랜드가 그랬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벨파스트'는 종교 분쟁으로 일상이 깨진 도시 벨파스트로 관객을 데려간다.

아홉 살 소년 버디(주드 힐)는 골목길에서 칼과 방패를 들고 뛰어놀다 얼어붙는다. "천주교도를 몰아내라!"는 고함이 들리고 돌과 화염병이 날아든다. 폭동은 점점 험악해지고 버디의 가족은 곧 심리적 한계에 다다른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아빠(제이미 도넌)는 다른 나라에서 새 출발을 꿈꾸지만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는 친숙한 공동체를 벗어나는 게 두렵다. 버디 또한 고뇌가 천근만근이다. 짝사랑하는 소녀를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벨파스트'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다크호스다. '나일강의 죽음'의 콧수염 명탐정으로 기억되는 케네스 브래나가 쓰고 연출했다. 벨파스트 출신인 그는 이 자전적 이야기를 아홉 살 버디의 시선으로 끌어간다. 혼돈에 대처하려면 현실에서 시선을 거둬야 하는데, 호기심 많고 산만한 소년이 주인공이니 탁월한 선택이다. 카메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신나는 음악이 가득한 풍경을 담아내며 도시를 지배하는 폭력을 잠시 잊게 만든다. 컬러를 배제한 흑백영화라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이 더 잘 드러난다.

이 가족은 집으로 들이닥친 혼돈과 공포를 농담으로 떨쳐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지혜롭고 유머러스한 할아버지(시아란 하인즈)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버디가 "영국에 가면 사람들이 우리말을 못 알아들을 거래요"라고 걱정하면, 할아버지는 "그건 문제가 안 돼. 난 결혼 50년 차지만 네 할머니가 하는 말을 아직도 못 알아듣거든"이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밴 모리슨의 1960년대 음악이 흐르는 '벨파스트'는 감상적이지만 유쾌하다.

아일랜드인은 떠나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안 그랬으면 펍이 전 세계에 퍼졌겠나? 버디의 할머니(주디 덴치)는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가거라! 돌아보지 말고!" 온기를 계량할 수 있다면 올해 아카데미 후보작 중 가장 따뜻한 각본이다.

[국제장편영화상]

상처 속으로 장거리 여행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우연히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지만 이유를 묻지 못한다. 아내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가후쿠가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연출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에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배우가 출연한다. 전속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도코)에게 핸들을 맡긴 채 가후쿠는 아내가 녹음해준 카세트테이프를 듣곤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가 원작이다. 과묵한 가후쿠와 미사키는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속삭이듯이 시동을 걸지만 그 이야기는 결코 얕지 않다. 가속과 감속, 승차감이 훌륭한 영화다. 큰 시련을 꿀꺽 삼키고 계속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관객은 남녀 주인공의 깊은 상처 속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첫 일본 영화다. 수어(手語)로 긴 잔상을 남긴 박유림을 포함해 다국적 배우들이 참여했다.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모두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올해 아카데미 레이스에서도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우주연상]

윌 스미스의 세 번째 도전

동양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있다면, 서양에는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가 있다고 할까. 24일 개봉하는 '킹 리차드'는 우리 시대 최고의 테니스 스타 자매를 길러낸 아버지 리차드(윌 스미스)의 실화에 바탕한 영화다. 이 자매가 어릴 적 살았던 캘리포니아의 콤프턴은 폭력 갱단과 힙합의 도시다. 여기서 백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테니스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개천에서 용 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집에 둘이나 있다는 말이냐"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아버지 리차드는 두 딸이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에도 공이 코트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받아내는 맹훈련을 시키는 바람에 '아동 학대' 오인을 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국 부모들과도 닮은 점이 있다.

자매의 성공이 아버지 없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영화의 빛나는 성취 역시 아버지 역의 배우 윌 스미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리'와 '행복을 찾아서' 이후 세 번째 남우주연상 도전. 덴절 워싱턴·하비에르 바르뎀까지 경쟁자들의 면면이 화려하지만, 어쩐지 그의 삼세판은 해피엔딩일 것 같다.

[여우조연상]

60년 전 영광을 다시 한 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카데미 시상식과도 인연이 깊다. 내털리 우드 주연의 첫 뮤지컬 영화는 1962년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상 등 10개 부문을 수상했다. 뮤지컬 영화로는 지금껏 깨지지 않는 최다 수상 기록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번 리메이크 영화 역시 60년 뒤인 올해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스필버그는 이미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두 차례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은 이유는 최근 국내 출간된 감독의 인터뷰집에 나와 있다. 1946년생인 그에게 이 뮤지컬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미국의 치부인 인종 갈등을 환기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인과 푸에르토리코 청년들의 대립 속에서 연인을 잃고 마는 비극적 여인 아니타 역을 맡은 아리아나 드보즈의 여우조연상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미 60년 전에도 푸에르토리코계 명배우 리타 모레노(90)가 같은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수상 시에는 두 배우가 같은 역으로 모두 여우조연상을 받는 진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물론 상을 건네는 시상자는 배우 윤여정이다.

[표] 아카데미 유력 후보작 기고자 : 김성현 기자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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