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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개정안 내자 경제 7단체 거센 반발

국민연금이 기업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추천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자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계는 정부가 기업들의 반대에도 이 방안을 추진할 경우 가처분 소송이나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7단체 부회장단은 20일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정부 방안에 대한 재계의 반대 입장을 전했다. 경제 단체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정권 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대못 박기" "정부가 국민 노후 자금으로 주주 노릇 하면서 경영 간섭을 정당화하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는 오는 2월 말 기금운용위원회 대면 회의를 열어 일원화 방안을 최종 결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노동자 등 입김 센 수탁위에 좌지우지

논란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24일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하면서 시작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종전 지침의 '주주대표소송'이란 단어를 '대표소송'으로 바꿔 소송 대상이 되는 기업을 확대하는 것과, 소송 제기 결정권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에서 수탁위로 바꾸는 것이다.

기업들은 주주대표소송을 대표소송으로 바꾸면, 다중대표소송까지 가능해져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주주대표소송은 지분 0.01%(상장사)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투자 기업의 이사나 감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반면 다중대표소송은 지분 보유 기업의 자회사나 손자회사에 대해서도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SK텔레콤·현대중공업 등 국내 주요 상장사 257곳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0.01%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범위를 넓히면 1000곳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만 먹으면 국내 어느 기업을 대상으로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민연금은 공정위에서 거액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기업 등 국내 주요 기업 약 20곳을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소송 제기 권한을 수탁위가 갖는 것이다. 수탁위는 위원장 1명과 위원 8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3명씩 추천한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기업 임원은 "사용자 추천 3인을 제외하고 근로자 추천 3인, 정부 입김이 강한 지역 가입자 추천 3인이 연합하면 어떤 기업이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수탁위에는 한국노총(2명)과 민주노총(1명)이 추천한 3명과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추천한 1명 등이 포함돼 있어 시민·노동 단체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 "정권 말 또 하나의 대못 박기"

이날 비공개 간담회에서 경제 단체들은 "대표소송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자문 기구에 불과한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런 지침을 강행하면 가처분 소송과 헌법소원 등 모든 법적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수탁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을 사전에 전문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문 기구인데 대표소송의 전권을 쥐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비공개회의에서는 "정권 말에 중요한 결정을 섣불리 내리는 것은 큰 문제다. 다음 정권에서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다음 정권에서 권력남용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뿐 아니라 수탁자 책임위원들도 힘들어질 수 있다"며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성일 차관은 회의가 끝난 뒤 분위기를 묻는 취재진에게 "서로 솔직했다"고 답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나 국가에 준하는 기관이 운영하는 연·기금이 자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주주대표소송·다중대표소송

주주대표소송은 0.01%(상장사)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투자 기업의 이사나 감사를 상대로 잘못된 경영 의사 결정 전반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 지분 0.5% 이상을 갖고 있는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그래픽]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대표소송 기고자 :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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