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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선거추태 날마다,달마다,해마다 벌어지는 예상못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를 흥분시키고 절망시키면서 우리들 국민의 정서는 더 이상 황폐해질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가고 있다. 사람사는 세상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에는 상상을 초월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 발생의 빈도 만큼 우리의 망각의 기능도 놀랍게 발달되고 있다.

1992년도가 시작되면서도 대형사고가 벌써 여러번 있었다. 대부분은 어느덧 잊어버렸지만 1월에 일어난 서울신학대학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은 대학의 자율화 문제까지를 새삼스럽게 크게 부각시키면서 우리를 긴장시키더니 2월에는 뉴키즈 사건이 뭇 어른들을 한탄과 경악과 반성으로 몰아갔다. 그 긴장과 한탄과 경악과 반성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요즈음은 14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가지가지의 웃지못할 서글픈 사태들이 우리의 정신생활 대부분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정서들을 온건하게 이완시키고 받아들이려면 그에 합당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서서히 합리적인 절차로 원인을 규명하고,그것을 제거해야만 정신건강은 유지되고 새로운 정신력은 충전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회전속도는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정서들이 겉으로는 망각된 것 같으나 사실은 해결되지 못한채 응어리로 뭉쳐져 무의식 속으로 축적된다. 이런 갈등들이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이기적이고 잔인한 심성과 태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들에게 과연 자존심과 상식은 존재하는 것일까 의심스럽다. 생각해 보기도 전에 말하며 행동하고는 그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태도는 자존심과 상식의 결여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형태의 비형식적 교육의 초점은 건전한 자존심과 온당한 상식의 배양에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생각않고 말부터

우리가 잘 아는대로 자존심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혼자 잘난척 하면서 뽐내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 또는 자긍심 또는 자존감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로 부터도 존경과 인정과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고 또 그런 것을 그대로 상대방에게도 베풀줄도 아는 인간덕목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와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신뢰하고 준수하기 때문에 남에게 실례되는 말이나 업신여김을 받을 만한 무분별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 신중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건전한 자존심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베푸는 순수한 사랑과 인정과 격려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생성되고 확립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엄격한 한계를 정해 놓고 분수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상식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랑과 인정과 격려는 오만과 독선과 이기심을 낳게할 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모와 환경으로부터 적절한 보호와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되면 자존심의 생성과 확립은 저해되어 자신의 가치를 불신하고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집단행동에 쉽게 동조하며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경향이 높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제 생각은 제쳐두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아첨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도 남의 뒤에서는 헐뜯고 비방하는 비상식적이고 자신없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무분별한 젊은이

인본주의 심리학자 마슬로우는 인간욕구의 최고 최상의 목표는 자아실현이며 이 목표에 다다르게 하는 직접적인 추진력은 건전한 자존심(감)의 확립에 있다고 역설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밝아오고 있다. 세계무대에서의 한국의 위상이 당당하게 되려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우리의 자녀들이 건전한 자존심과 온당한 상식을 가지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한 모든 비형식적인 교육의 내용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우리들 부모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이화여대교수 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