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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준기자

『민간신앙에 나타나는 신들은 한결같이 감정이 풍부합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도와주다가도 잘못하면 마구 벌을 내리거든요. 우리네 심성과도 많이 닮았지요. 』

향토사학자 리재곤씨(이재곤·57)가 조선시대 이후 서울의 동제당이나 성주신앙 등 다양한 민간신앙의 유래와 변천을 살핀 「서울의 민간신앙」(백산출판사간)을 냈다. 현존하는 27개 동제당에 얽힌 전설 등을 구수하게 풀어낸 이씨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80년 서울시사편찬위원회의 위촉으로 「서울6백년사」의 무속관계를 집필하면서였다.

『단군을 받들던 역삼동 동제당이 도로확장으로 없어지는 거예요. 신생활운동이다 근대화다, 새마을운동이다 해서 때려 부수기만 했던 게 민간신앙입니다. 사실 민간신앙은 서민문화의 핵이요 정수 아닙니까. 기록으로나마 보존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더군요. 』

동네노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조사과정에서 웃지못할 일도 많았다. 노인정에서 꼬치꼬치 캐묻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려 파출소 순경이 출동했던 일, 토박이노인끼리 다른 주장을 내세우다가 말다툼 끝에 토라지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81년 중앙도서관 사서직을 박차고 나온 뒤 15년 동안 생계를 위해 야간에 고시학원 국사강사를 전전하면서도 조사활동을 계속했다. 그 다리품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이야기로 녹아든다.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영등포 상산전 앞을 말을 탄 채 지나려 했다. 한데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줄 몰랐다. 몇번의 채찍질 끝에 병사는 말의 목을 벤 뒤 도망치고 말았다. 」(영등포 3동 동제당인 상산전)

「 란(여단)은 자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을 제사지내던 란이다. 종로구 평창동 1번지에 있었으며, 순종 2년에 폐지됐다. 제사 때 신위 왼편에 두는 귀신은 전쟁으로 칼을 맞았거나 돌림병으로 죽은 자였으며, 담과 집이 무너져 압사한 자-벼락을 맞거나 떨어져 죽은 자-난사(난사)에 죽은 사람 등은 오른편에 두었다. 」

『동제는 아쉬운대로 남았지만 성주신앙이나 대감신앙, 부엌신으로 밥짓는 일과 음식맛을 관장하는 왕(조왕)신앙 등 집과 관련한 신앙은 사라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하는 이씨의 꿈은 바위와 관련한 신앙과 전설을 모으는 것이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 송파구의 한 벌판에 임경업장군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었어요. 이제는 아파트촌으로 변했고, 바위는 사라져 버렸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