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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서 10년째 수어 통역 윤남씨
지난 2년간 코로나 방역 브리핑도
내일 장애인의 날 공연에도 나서

윤남(48)씨는 지난 2년간 코로나 방역 브리핑으로 낯익은 수어 통역사다. 그는 요즘 대학로 소극장으로 출근한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연극 '슈퍼맨처럼!'(연출 김민기)에서 수어 통역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0년째다. 윤씨는 "농인(聾人) 엄마와 청인(聽人) 자녀는 공연장에서 함께 웃기 어렵다"며 "내 통역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 공연에도 수어 통역이 잡혀 있다.

국내 등록 장애인 263만명 중 청각장애인은 약 40만명에 이른다. 수어 통역사는 침묵의 세계에 사는 그들을 나머지 세계와 수어(手語)로 이어준다. 청각장애인의 입과 귀, 손과 발이 돼주기도 한다. 국내에서 배출된 수어 통역사 1000여 명 가운데 공인 1기인 윤씨는 "장애인과 관련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이나 토론회, 정책방송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어 통역을 맡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1995년 친구를 기다리던 도봉산 입구에서 어떤 남자가 건넨 쪽지 한 장이었다. "저녁 7시에 만나요. 02-○○○-○○○○." 청각장애인인 그 남자는 이 쪽지와 동전 몇 개를 주며 공중전화를 가리켰다. 전화를 걸어 "저녁 7시에 만나요"라고 전했을 뿐인데 수화기 너머에선 "감사합니다!"가 메아리쳤다. 그날의 충격은 '들리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갔다. 윤씨는 1997년부터 수어를 익혔다.

"그 남자의 간절한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인 수어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은 '들리는 세계'에서, 나머지 절반은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살았네요(웃음). 수어 통역도 상황에 따라 무게중심이 달라집니다. 대학원에서는 정확히, 방역 브리핑은 빨리, 공연은 각 인물로 변신하면서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농아인은 손을 이용하지 않고 표정과 눈썹의 움직임만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잠깐만 기다려"가 우리에게는 5~10분을 뜻하지만 그들에겐 두세 시간이 걸린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방문할 때는 팩스로 '몇 시에 간다'고 연락하면 문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청각장애인은 교통사고로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며 "뒤에서 울리는 요란한 경적을 약하게라도 듣기 위해 보청기를 낀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주연한 영화 '코다'가 작품상을 차지했다. 윤씨는 "그것도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국내에선 역설적으로 '코로나 덕분에' 수어 통역사가 TV 화면에 방역 브리퍼와 같은 크기로 등장하게 됐다"며 "굉장히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장애인의 날은 지자체들이 장애인에게 예산을 좀 쓰고 표창장 수여로 퉁치는 날이 된 같아 씁쓸해요.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장애인을 이상하게 보지 않을 만큼 사회가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수어 통역사로 일하며 얻는 보람은 뭘까. "배우들처럼 저희도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 같아요. 그저 통역사일 뿐인데 남들이 안 가는 법원이나 경찰서도 가게 되고 온갖 경험을 하게 됩니다. 좋은 친구도 많이 얻었어요. 그들 덕분에 제가 정체되지 않고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에요."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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