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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 추모식 테러' 보복인 듯… 아시아까지 번지는 중동 불길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의 그림자가 아시아에까지 드리우고 있다. 하마스의 최대 후원 세력인 이란이 남아시아 국가 파키스탄 영토를 공격한 것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된 전쟁의 불길이 또 하나의 화약고 남아시아로 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 국영 타스님통신은 16일 이란이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에 있는 반(反)이란 무장 단체 '자이시 알아들'의 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전했다. 발루치스탄은 이란 동남부와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접해 있는 국경 지대다. 파키스탄 정부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이전부터 이란 방위군과 무장 단체들 간의 교전이 산발적으로 있어 왔다. 하지만 이란이 파키스탄 영공까지 침범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 주재 이란 대표를 초치하고 "(이번 공격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란에 있다.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이번 공격으로 최근 5년간 악화 일로였던 두 나라 관계가 최악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구의 77%가 이슬람 다수 수니파를 신봉한다. 이슬람 소수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여러 수니파 국가들과 종파 갈등을 빚어왔지만 파키스탄과는 원만했다. 1947년 독립을 선언한 파키스탄을 처음 인정해준 나라가 이란이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파키스탄은 이란과 적대 관계인 미국으로부터 "이라크를 지원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중립을 지켰다.

극렬 수니파 무장 단체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시아파 신봉 소수 민족을 탄압하자 이란이 반발해 두 나라 간 갈등이 깊어졌을 때 파키스탄이 중재자로 나섰다. 하지만 2019년 자이시 알아들이 이란 남동부 시스탄주(州)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이란 혁명수비대 대원 27명이 죽은 사건을 계기로 두 나라 관계는 경색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의 이번 공격은 오랫동안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해온 양국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이 이란에 군사적 보복 조치를 단행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공격이 이슬람권의 전통적인 갈등 구도인 수니·시아 종파 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지난 3일 이란 케르만에서 열린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 연쇄 폭탄 테러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을 때 시아파를 적대시해온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IS의 핵심 연계 세력인 IS호라산의 주 발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는 두 나라의 갈등이 종파 차원을 넘어 잠재적 핵보유국 간의 분쟁 구도가 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은밀하게 핵 물질을 농축하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파키스탄은 한발 더 나아가 인도·이스라엘·북한과 함께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간주되는 나라다. 이란은 2022년 9월 복장 단속 과정에서 의문사한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번진 반정부 시위에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4)의 후계 문제까지 겹쳐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다. 건국 이후 임기를 채운 총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질적 정치 혼란을 겪어온 파키스탄은 다음 달 8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파키스탄이 위치한 남아시아는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지정학적 교차로라는 점에서 중동발 전운이 더욱 동진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란이 혼란한 국내 정세 극복을 위해 수니파 국가들과 갈등 구도 구축을 시도하고, IS 등 극단주의 단체들은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남아시아 일대 추종 세력들의 자생 테러를 획책하며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은 분쟁을 해외로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와 미국·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대결하고 있는 홍해 일대 상황도 악화 일로다. 지난해 11월부터 '반이스라엘 세력 척결'을 표방하며 홍해 통과 상선들을 상대로 30여 차례 무차별 공격을 해온 후티는 이날 홍해 남부 예멘 앞바다에서 그리스 국적 화물선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에 미국은 예멘 본토 내 후티 본거지에 대한 세 번째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미국이 이날 후티를 외국테러조직(FTO)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후티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FTO로 지정됐으나, 바이든 정부 들어 예멘 민간인 구호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래픽] 중동 전쟁 확산 타임라인 기고자 :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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