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펀드 PIF 창업주에 이어 두번째 '큰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최근 국내 대표 게임사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2대 주주로 잇따라 올라섰다. 약 3조5000억원을 쏟아부어 '3N'이라 불리는 국내 3대 게임사 가운데 넷마블을 제외한 두 곳에서 창업주 다음의 '큰손'이 된 것이다.

이 펀드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국부펀드로, 기금 규모는 5000억달러(약 600조원)에 달한다. PIF는 '탈석유 전략' 차원에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게임 업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PIF가 지분을 대규모로 확보한 만큼 국내 게임 업체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탈석유' 위해 게임 업체 인수

PIF의 국내 게임 투자 사실은 보유 지분 5% 초과로 인한 공시 의무에 따라 지난달 처음 공개됐다. 16일 일본 전자공시시스템(EDINET) 등에 따르면 PIF는 넥슨 본사인 넥슨재팬 지분을 8.14% 보유하고 있다. 누적 투자금은 약 2조3300억원이다. 넥슨 지주사인 NXC(28.6%)와 NXC가 100% 보유한 벨기에 소재 자회사인 NXMH(18.8%) 지분을 합쳐 총 47.4%인 상황에서 PIF가 2대 주주에 올랐다는 평가다.

PIF의 엔씨소프트 지분율은 9.26%(투자금 약 1조1000억원)로,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11.98%) 지분율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PIF는 2020년 말부터 주로 미국·일본 게임사들의 지분을 사들였고, 이번에 투자 대상을 한국 게임 업체로 확대한 것이다. 미국에선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아츠(EA), 테이크투, 일본에서는 SNK·캡콤에 집중 투자했다. PIF는 블리자드 매입 후 평가손실 30%를 넘기며 고전하다가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 인수 소식이 전해진 후 극적으로 11억달러 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경우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큰 한국 게임사들의 경쟁력을 눈여겨보다 저평가 시점에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약 1년 만에 최고점(약 100만원)에서 절반으로 하락한 상태다.

PIF는 지난 1월 '새비 게이밍 그룹'이란 게임 회사를 출범하고 e스포츠 기업인 ESL과 FACEIT을 15억달러(약 1조 8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ESL은 스타크래프트2,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종목의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온 회사이며, FACEIT은 e스포츠 챔피언십 시리즈 등을 운영해온 게임 플랫폼이다.

PIF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게임 업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탈석유'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7년 집권 이래 석유 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2020년까지 우버·테슬라 등 첨단 기술 기업에 주로 투자해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 투자 확대 전략을 내놓고 게임 산업에 집중 투자했다. 빈살만은 "비디오게임과 함께 자란 첫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게임 워싱·경영 간섭 우려도

PIF는 한국 게임 업체 지분을 대규모로 확보하면서 그 목적을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게임 업체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PIF가 지분을 대량 보유한 만큼 경영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개선을 요구할 수 있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동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게임 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 넷마블이 실질적으로 우호 지분이나 다름없고, 넥슨의 지주회사 지분이 압도적으로 커서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게임 투자는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스포츠를 이용해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것)에 이은 '게임 워싱(game-washing)'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우디가 자국 인권 탄압 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스포츠를 이용해 이미지 세탁을 해왔는데, 이제는 게임이 새로운 이미지 포장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PIF가 게임 회사인 새비게이밍그룹을 만든 만큼 향후 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데 한국 업체들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 엔씨소프트 지분 구조 / 넥슨 지분 구조

[그래픽] PIF가 2020년 이후 인수한 주요 게임 회사 기고자 : 이벌찬 기자
본문자수 : 217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