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평화협정 15항 논의… 분기점 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2일째인 17일(현지 시각)에도 양측 간 치열한 공방전은 계속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 시내에 폭격을 퍼부어 수백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고, 수도 키이우(키예프)에도 주거지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점령한 공항을 포격해 사용 불능 상태로 만들었고, 마리우폴에서는 시내로 진입하려는 체첸 부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이 4주째에 접어든 가운데 교착 상태를 보이는 전선이 늘면서 정전(평화) 협상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총 15항목의 평화 협정 초안을 준비 중"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이견이 크다"고 보도했다. 양측 협상 대표들이 구체적 협상 내용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여러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협상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와 중립국화, 러시아 철군(撤軍) 등이 핵심 이슈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에 대해선 양측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진심으로 협상을 원하는지 여부이다. 푸틴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침공 의사가 없다" "외교적 해결 노력을 하겠다" 등 기만술을 썼다. 이번에도 유화 제스처를 취한 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다시 공세에 나서려는 전술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드레이 코지레프 전 러시아 외무장관은 유로뉴스에 "협상(제스처)은 그저 '쇼'일 뿐"이라며 "전쟁의 돌파구를 찾을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를 줄이려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장기화를 피하려는 러시아가 협상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러시아 요구 사항은 세 가지이다. 첫째, 나토 등 특정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나토 등 기존 군사 동맹으로 제한하느냐, 아니면 미래에 새로 등장할 안보 동맹까지 포함하느냐를 놓고 양측 입장이 갈릴 수 있다. 둘째, 외국의 군사 자산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타스 통신은 "미군·나토군 기지와 (사드 등) 미사일 요격 시스템 등이 대상"이라고 전했다. 셋째, '저강도 무장'이다. 핵무기·순항미사일 등 첨단 전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러시아가 다시 침략해 올 경우 이를 방어할 동맹과 무기를 갖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중립화는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유사시 관련 강대국들이 자동으로 군사적 개입을 하는 다자(多者) 조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미국과 영국, 터키 등이 참여하는 '안보 기구'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거론되는 국가들이 나토 회원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안보 기구는 결국 나토 가입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다. 양측은 현재 이와 관련한 평화 협정의 구체적 조건과 문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 "러시아의 공격 행위가 당장 중단돼야 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각론에선 입장 차이가 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구(舊) 동유럽국들은 "이 기회에 러시아의 전쟁 의지를 꺾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을 더 지속해 러시아의 힘을 빼놓고, 푸틴 정권의 붕괴까지 노려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 미국 국방부는 16일 전황 브리핑을 통해 "개전 20여 일 만에 러시아군 사망자가 약 7000명, 부상자는 1만4000~2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 병력이 15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병력의 14~19%가 손실이 난 셈이다. 미 국방부는 "부대 사상자 비율이 10%를 넘어가면 전투 수행이 힘들다"며 "러시아군이 이런 상황에 근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과 외신에 따르면 전차를 버려두고 탈영하는 병사, 민가를 찾아 러시아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하는 병사가 속출하는 등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서유근 기자
본문자수 : 218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