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총리 사퇴 번복… 비상사태 선포
시위대, 한때 총리관저 등 점거
군부 시위진압 땐 유혈사태 우려

스리랑카가 국가 부도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무정부 사태에 빠져들고 있다. 해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총리를 권한 대행으로 지명하자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에 이어 총리 관저, 국영방송사 등을 점거했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각) 새벽 군용기 편으로 탈출한 뒤 몰디브를 거쳐 14일 오후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앞서 그는 몰디브에서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애초 대통령과 동반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던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사퇴 입장을 철회하고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하고 군부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총리가 사퇴를 번복하자 격분한 반정부 시위대는 총리 관저와 국영방송 등을 점거했다가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단 풀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스리랑카 의회는 오는 20일 고타바야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채울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러나 시위가 재발할 경우 군부의 유혈 진압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스리랑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중국에 제공한 막대한 차관과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스리랑카 경제 체질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스리랑카 부도 사태가 저개발국의 돈줄인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낳고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2000년 초반부터 중국 차관을 도입해 항구, 국제공항 등을 건설했다. 스리랑카 남부 함반토타 항구 사업이 대표적이다.

고타바야 대통령의 형이자, 2005 ~2015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인 함반토타에 중국 차관 14억달러(약 1조8300억원)를 투입해 항구를 건설했다. 하지만 운영 손실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스리랑카 정부는 항구 운영사 지분 70%를 중국 국영기업에 넘기고 99년간 항구 운영권도 내줬다. 지난 2013년에는 중국 자금 1억9000만달러(약 2500억원)로 라자팍사 국제공항을 지었다. 100만명 이상의 외국 방문객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낮은 이용률로 항공사들이 떠나면서 '유령 공항'이 됐다. 인도 언론 더프린트에 따르면 중국수출입은행이 차관을 제공해 2019년 콜롬보에 들어선 '연꽃탑'은 남아시아 최고 높이인 350m 방송탑에 고급 호텔, 쇼핑몰까지 유치하려 했지만 지금은 텅 빈 상태다. 경제 체질이 악화된 상황에서 스리랑카 경제는 코로나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았다. 관광 산업이 충격을 받았고 2020년 중반부터 스리랑카의 외환보유액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중국은 2020~2021년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 부채의 상환을 연장해줬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지난 1월 스리랑카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부채 부담이 크다며 절박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중국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국가 부도 사태를 막지 못했다. 영국 해외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 국장을 지낸 리처드 무어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스리랑카는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은 12일 "스리랑카 대외 부채 중 중국의 비율은 10%"라며 "중국이 스리랑카 부채 문제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완전한 거짓"이라고 했다. 중국일보는 13일 "일대일로의 악마화를 중단하라"고 했다. 기고자 :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이현택 기자
본문자수 : 172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