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안데르센賞' 발표 일주일 앞 최종 후보 오른 이수지 작가

"중학생 아들과 딸에게 '엄마 다시 안데르센상 후보 됐다'고 했더니, '그거 받은 거 아니었어?' 하던데요."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의 올해 최종 후보 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그림책 작가 이수지(49)가 웃으며 말했다.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선정된 데 이어 같은 작가의 두 번째 후보 선정이다. 그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인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수상자로도 뽑혔다. 서울 광진구 아파트 단지 한편 문방구 건물 4층, 작가의 작업실은 언뜻 자유분방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면 차분하고 단정한 그의 그림을 빼닮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댁, '찰리와 초콜릿 공장'(로알드 달)의 그림작가 퀀틴 블레이크, '돼지책'과 '윌리' 시리즈의 앤서니 브라운, '삐삐 롱스타킹'의 창조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안데르센상 수상자 목록은 세계 어린이 책의 역사를 만들어온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이수지 작가에게도 안데르센상은 꿈의 영역.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의 수상자 선정 과정 자체가 국가 대항전 같다. "후보를 낼 역량을 갖춘 나라가 세계 33국밖에 안 돼요. 그 과정에 많은 분이 함께 고생하죠. 후보가 된 것 자체가 영예롭고 감사한 일이에요."

1990년대 서울대 서양화과에서 보낸 대학 시절, 그림책과 첫 인연을 맺었다. "민중미술 유행의 끝자락, 추상과 구상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격변의 시대"였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겠다는 고민이 컸어요. 그때 교수님 책장을 보다 '아티스트 북(Artist's Book)'이라는 장르를 발견했죠. 캔버스에 그려 갤러리에 걸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놀라웠죠. 종이책이라는 매체의 유연한 물성도 매력적이었고요."

영국 런던 캠버웰 예술대에서 '북 아트(Book Art)' 석사과정을 밟았다. 한국선 '북 아트'하면 책 제본과 장정을 떠올리지만, 서구에선 개념 미술의 한 줄기. 작가는 그때 졸업 작품으로 루이스 캐럴의 고전을 재해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들었다. "9명이 같이 쓰던 런던의 공동 주택(share house) 벽난로에 무대를 꾸미고, 혼자서 그림 그리고 사진 찍어 만든 책이었어요. 가제본한 책을 들고 2001년 볼로냐 도서전에 놀러 갔는데, 이탈리아의 실험적 그림책 출판사 '코라이니' 편집자를 만나 덜컥 계약까지 맺었네요." 이 책은 현재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졸업 뒤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가서 그린 책이 '파도야 놀자'(비룡소)였다. 미국서 먼저 출간돼 이수지의 이름을 국내에까지 알렸다. "외국서 더 유명한 작가" "해외서 역수입된 작가" 같은 수식어들도 이때 붙기 시작했다.

작품마다 재료 형식 스타일이 다 다른 것 자체가 이수지 고유의 스타일. 그의 책은 그림이 주인공이 되고, 텍스트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감상자를 놀라고 당황케 하는 게 예술의 한 속성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아이들의 마음은 그런 즐거운 당황스러움을 향해 열려 있죠. 사람들이 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머리 위에 물음표 모양이 떠오르는 듯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해요."

우리나라도 그림책 읽는 어른들이 늘어난다. 그림책이 성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작가는 "그림책은 저마다 읽는 사람이 들어가 푹 빠져들 수 있는 하나의 세상이고, 그 느낌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했다. "누구나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용기를 원하죠.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저편'으로 건너가 보는 데 그림책만 한 게 있을까요?"

올해 안데르센상 수상자는 21일 볼로냐 도서전에서 발표되며, 시상식은 9월 열릴 예정이다. 기고자 : 이태훈 기자
본문자수 : 192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