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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권영주 옮김｜이레｜482쪽｜1만3500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마을 아이들은 학교가 없다. 80명의 아이들이 허허벌판 언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교사도 없이 나무막대기로 숫자를 그릴 뿐이다.

이들을 돕지 않아도 될 경우의 수는 너무나 다양하다. ①내 코가 석 자. ②남이 하겠지. ③도와준다고 뭐가 바뀌나. ④돕겠다고 약속했으나 곧 잊음. 《세 잔의 차》 주인공인 그레그 모텐슨(52)은 그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그는 낡은 뷰익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을 해결하고 아침은 99센트짜리 도넛 세트로 때우는, 산에 미친 비정규직 남자 간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15년간 파키스탄의 산간 마을 80곳에 학교를 세웠고, 그 덕분에 3만여명의 아이들은 더 이상 언 땅 위에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 세계 그 어느 갑부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기적'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모텐슨은 1993년 히말라야 K2 등반을 하던 중 조난을 당해 현지인 포터의 도움으로 코르페 마을로 가 목숨을 구한다. 교육받을 기회 없이 가난한 미래를 물려받는 아이들의 모습에 모텐슨은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가슴이 찢어졌다"고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덜컥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한다.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런 약속을 남기고 소식이 끊어진 '파란 눈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모텐슨은 곧장 미국으로 가 유명인 580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 모금을 시작했다. 돌아온 답장은 20달러가 동봉된 편지 달랑 한 통. 그는 점심을 굶으며 자신의 박봉을 모았고, 차를 팔았다. 그러느라 연인이 떠나고, 직장에서는 해고됐다.

돈을 모으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현지에서 건축자재 하나 사는 데만 며칠이 걸렸고, 속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학교를 짓는 동안 탈레반에 납치·감금됐고, '학교 사업은 코란에 위배된다'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비난도 빗발쳤다. 그러나 학교 짓기는 계속됐다. "아이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돌을 깨고, 담을 쌓아 올린 것은 다름아닌 마을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학교를 지으려면 '세 잔의 차'를 마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들과 처음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219쪽) 모텐슨은 세 잔의 차를 마실 시간뿐 아니라 존중과 믿음을 보여주었고, 주민들도 이에 헌신으로 답했다.

이 모든 과정은 모텐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학교를 지으며 자신 앞을 막아선 장애를 극복해 승자가 됐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이유를 찾았고,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유명인이 됐다. 진정한 구원을 받은 것은 아이들이 아닌 바로 모텐슨 자신이었다.

 

기고자 : 김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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