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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우크라이나 정철환 특파원 르포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중심가인 '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독립 광장)'. 이른 아침부터 폴란드와 프랑스 등의 방송사 취재진이 거리를 다니며 지나가는 시민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들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 결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자 급파돼 현장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키예프는 요즘 외국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키예프 곳곳을 다니며 취재하는 동안에도 러시아는 군사적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러시아는 전날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다시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협상 하루 전에 압력 수위를 높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3000여 명의 병력과 T-72 탱크, BMP-2 보병전투차 등 총 300여 대의 기갑 장비가 동원돼 무력을 과시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야 스트라니'의 안드레이 스미르노프 편집장은 "침공이 현실화하면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것이 목적인) 나토가 그 누구보다 먼저 응분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토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된 러시아와 나토의 협상은 오후 늦게까지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끝났다. 유럽 외교가에선 "러시아가 색다른 제안을 내놓지 않는 이상, 미·러 협상과 마찬가지로 양쪽의 상반된 입장만 확인하고 끝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직접 대화의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1일 키예프 대통령궁에서 옌스 플로트너 독일 총리 외교정책 보좌관과 에마뉘엘 본 프랑스 대통령 외교 보좌관 등 양국 특사(特使)를 만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만남 직후 "러시아와 '노르망디 포맷(형식)'을 통한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르망디 포맷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대화에 독일과 프랑스가 중재자로 나서는 4자 회담이다. 201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 이 4국 정상이 처음 만난 것에서 비롯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리(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의 노력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무력 침공 가능성이 커지는 동안 국제 외교 무대에서 사실상 배제된 채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독일·프랑스의 도움으로 역할을 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에 응할지는 확실치 않다. 독일과 프랑스 특사는 지난 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노르망디 포맷의 회담 참여 여부를 타진했다.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은 이에 대해 12일 "4자 회담 이야기는 계속 나오지만, 일정에 대해 서로 협의된 것은 없다"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키예프 주재 한 서방 외교관은 "러시아 주장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문제면, 우크라이나와 직접 협상하면 될 일"이라며 "하지만 미국의 의심대로 우크라이나를 인질 삼아 서방에 다른 요구를 관철하려 한다면, 노르망디 포맷은 러시아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즉 우크라이나와 협상에 나서면 미국·나토와 협상이 동력을 잃고, 우크라이나를 계속 무시하면 결국 '딴 속셈'이 있다는 것만 확인해 주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러시아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블라미디르 오그리즈코 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현지 언론을 통해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진짜 요구를 정확히 드러내지 않아야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여긴다"며 "크렘린은 이런 외교 정책 사기에 능하다"고 비판했다. 옥사나 시로이드 전 우크라이나 의회 부의장도 "'우크라이나를 침공 않겠다'는 러시아의 속뜻은 '정말 침공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완전한 영향력 아래 두려 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지속되면서 한국 기업이 입을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의 대(對)러시아 수출 제재가 현실화하면, 미국 기술이 들어간 한국산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자동차 등의 러시아 수출이 막힐 수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9번째 교역 대상국으로 지난해 무역액은 200억달러(약 24조원)에 달한다. 기고자 : 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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