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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질 솜씨에 여러분의 재(再)취업 여부가 달려 있어요.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하세요."

모스크바 크렘린(대통령궁)에서 약 5㎞ 떨어진 스니지나야 거리의 한 미용학원에서 강사 엘비라(Elvira)의 말이 끝나자 B학급 여성 수강생 12명이 마네킹 쪽으로 이동했다. 마네킹 6개에 2명씩 달라붙은 수강생들은 마네킹에 씌워진 가발을 어떻게 손질할지 잠시 의견을 나눈 뒤 이내 가위질을 시작했다.

약 60㎡의 면적으로 비좁게 보이는 이 학원 강의실 5개는 지난 9일 오전 10시 문을 열자마자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한 학원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강의실의 절반 정도가 비어 있었지만, 요즘은 금융위기 때문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강사 엘비라는 "현재 수강생 60명 중 80%가량이 20~40대 여성 실업자거나 남편이 실업자가 된 주부들"이라고 귀띔했다.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작년 9월 81만여명이던 러시아 실업자는 지난 10일 2배 이상인 약 164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막심 토필린(Topilin) 보건부 차관은 지난 6일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 연말 실업자가 700만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현실에서 이즈베스티야를 비롯한 러시아 일간지에는 요즘 구직자들을 위해 수강료가 무료이거나 저렴한 재교육 관련 정보 및 학원이 자주 소개된다. 언론들이 취업이 가장 유망하다고 소개하는 직업은 손발톱 미용전문가와 헤어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아티스트 등 모두 미용 관련업이다.

물류업체 관리직원으로 근무하다 지난달 직장을 잃은 수강생 타티야나(Tatiyana·31)는 "미용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6개월의 강습을 받으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업종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용 학원은 메이크업이나 손발톱 미용 강의는 횟수에 상관없이 수강료가 대부분 무료이고, 헤어스타일리스트 양성 과정은 1회당 평균 350루블(약 1만4000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수강생들은 교육을 마치고 학원 수료증을 법률사무소에서 공증(公證)받으면 한국의 미용실에 해당하는 '살롱크라사티'에서 일하거나 재택(在宅) 영업을 할 수 있다.

미용 분야를 통한 재취업이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미(美)가 여성의 제1덕목으로 취급받는 러시아적 특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부미용에 관심이 높고 모발미용이나 매니큐어(manicure), 페디큐어(pedicure) 같은 연관산업이 발달해왔다. 매니큐어와 페디큐어 전문 미용실도 모스크바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지난달 말 전(全)러시아여론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경제위기에 따른 가계대책으로 식비와 교통비를 줄이겠다는 여성은 많았지만 미용분야 지출을 줄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고자 : 권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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