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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충격이 엄청 가혹하다. 세계의 서민과 중산층이 겪는 고통이 이제야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이 고개를 들고, 공황 이후를 생각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과거와 미래를 비교하며 나라를 다시 디자인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890년과 1929년의 세계공황은 6년 이상 오래 지속되었고 전쟁과 혁명을 수반했다. 또한 경제적 대변동을 몰고 왔다. 공황에 허덕이던 서구 기업들은 189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테일러·포드주의 생산방식을 다투어 채택했다. 이와 함께 혁명적으로 향상된 생산성을 바탕으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사회와 '복지국가'가 들어섰다. 1942년 윌리엄 베버리지가 케인스 이론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복지국가'는 전후에 크게 성공했고, 1980년까지 모든 국가들의 모델로 통용되었다. 이러는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가 퇴조한 반면, 미국이 선두로 나서고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뒤쫓는 형국의 국제적 세력변동이 일어났다.

이번 대공황은 경제관리 경험과 국제우호 덕택에 다행히 전쟁과 혁명을 수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황 후에도 큰 변화들이 몰아칠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경제, 어떤 국가모델일까? 1968·1974·1980년의 세 차례 경제불황을 겪으면서 테일러·포드주의는 소멸했고,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는 해체위기에 처했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물적 복지는 지구환경 때문에도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신기술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가운데 뜻밖에 '지식경제'라는 '신경제'가 창조되었다. 동시에 자유방임시장을 무기로 빈사의 복지국가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신자유주의가 한때 기승을 부렸고, 그러다 공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 공황 후에도 국가 간 세력관계의 격변이 예상된다. 미국과 서유럽의 약화와 중국·일본·한국·러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의 약진이 예고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불평등과 불균형이 더욱 커질 것이다. 동시에 이번에 살아남는 나라와 기업은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공허해질 '물적 평등' 공약에 기초한 '복지국가'는 공황을 초래한 '신자유주의'와 함께 무대를 떠날 것이다.

남는 것은 '지식경제'와, 이번 대공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부활한 '케인스주의'다. 전보다 절제된 케인스주의 운영기제를 잘 구축하고 우리가 이미 선두에 선 '지식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가 내건 '저탄소 녹색경제'는 경제모델이 아니라 환경과제다. 이것은 지식경제 발전의 측면효과로 저절로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에른스트 폰 바이체커의 로마클럽 보고서에 의하면, 여러 신기술을 본격적으로 상업화한다면 자원사용을 1998년 기준량의 25% 수준까지 줄이는 효율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공황 이후를 보는 세계 기업들은 이번에 여러 신기술들을 다투어 투입할 것이다.

이 효율혁명으로 산업사회의 '복지국가(welfare state)'는 퇴출되고 지식사회의 '행복국가(wellbeing state)'가 등장할 것이다. '행복국가'는 GDP와 함께 특히 GNW(국민총행복지수)를 중시한다. '행복'은 비물질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물적 복지 기본선이 확보된다면,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행복 앞에서는 재벌과 서민이 따로 없다. 만인이 '절대평등'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복지혜택을 나눠주듯 '주관적' 행복을 나눠줄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가로막는 '불행의 원인'을 없앨 수 있다. '불행의 원인'은 특히 천만의 정신질환, 수백만의 불치·희귀질환, 장애, 위해식품, 실업, 가정해체, 강력범죄, 사고와 재해, 행정태만, 사법부정 등 수없이 많다. 한국은 지금 교통사고·자살·이혼율 세계 1위, 94개국 중 GNW 세계 57위의 세계적 '불행국가'다.

공황 이후의 유력 모델은 아마 '절제된 케인스주의'와 결부된 '지식경제'와 '행복국가'일 것이다. 국가·사회·기업체계의 변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공황 대처 정책들도 다 공황 이후의 국가 디자인을 담아야 할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고자 : 황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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