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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이 되면서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났다. 이름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에 대해 백지상태로 진학했었다. 신문과 잡지를 읽지않는 가정. 일본 글을 못읽는 부모. 조센징(조선인) 어린이하고만 놀았던 고야마(소산) 가정탁아소. 이런 환경속의 나는 「준비교육」을 전혀 받지못했다.

이름을 쓸 수 없던 나는 1학년을 보내면서 참 많이 성장했다. 「가타카나」는 전부 읽고 쓸 수 있게됐다. 산수도 틀림이 없다. 나는 학교 공부가 재미있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게 즐거웠다. 『잘했어요』라는 선생님 칭찬이 기뻤다. 집에 돌아와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2학기때 습자를 배웠다. 먹냄새가 좋았다. 집에서 홀로 정성 들여 붓글씨 연습을 했다. 흔히 습자연습은 황색지 반지(반지), 혹은 신문지에 한다. 우리집에선 신문을 보지않기 때문에 요시다(길전)아저씨 집에서 가져온, 날짜가 지난 신문지를 썼다. 요시다아저씨는 고물상 조센징이다. 다리를 약간 절며 리어카를 끌었고, 고물을 사거나 엿을 팔았다. 꺽다리였고, 어딘가 모르게 불쌍해 보였다. 어머니는 요시다아저씨에게 밥과 술을 대접했다. 요시다아저씨도 내 습자 연습지가 떨어지지않도록 신문지를 대줬다. 신문지를 반으로 잘라 귀퉁이를 고정한 것이 내 연습장이었다. 실력이 조금 나아지면 노란 종이 반장에 습자연습을 했다. 좀더 나아지면 하얀 종이에 썼다.

저녁을 먹은 뒤 밥상을 구석방으로 치우고 또다시 공부했다. 주로 읽기 쓰기였다. 「국어」교과서를 읽은 뒤 공책에 쓰기연습을 되풀이했다. 부업으로 편물을 하던 어머니는 내 책읽는 소리를 좋아하셨다. 어느날 내 공책을 보고 『기마짱, 글씨가 차츰 익숙해지는구나』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어머니는 학교를 다니지않아, 글을 읽을 수 없기때문이었다.

『엄마, 이글을 읽을 수 있어？』 『기마짱이 열심히 공부하기때문에 옆에 있으면 저절로 외워지게 된단다. 』

짜로 어머니는 그 뒤로도 줄곧 내 쓰기 읽기와 지식을 모조리 흡수했다. 그리고 늘 나보다 우수했다. 백지상태로 1학년이 됐던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선생님에게 칭찬받았고, 어머니 격려를 받으며 하루하루 성장했다. 1학년도 얼마 남지않았던 어느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가네무라(김촌), 축하합니다. 수료식때 상장 받기로 결정됐어요. 정말 축하해요. 어머니도 오시라고 해요. 』 나는 기뻤다. 껑충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나 공부 잘해서 상장 받게됐어. 선생님이 엄마도 수료식에 오라고 하셨어. 』 『정말이니. 잘됐구나. 엄마도 갈거야. 』

당시 학교행사는 마을행사였다. 운동회, 학예회도 그랬지만 졸업식은 중요한 행사였다. 선생님은 손님과 부모형제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교실사이 커다란 칸막이를 빼내고 교실 여러개를 합친 것이 식장이었다. 상급생이 청소한 뒤 의자를 죽 나열했다. 1학년 교실 모두는 들떠있었다. 2학년이 된다는 말만 나와도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개근상을 타는 친구들과 함께 상장받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에 졸업식때 학부모들은 「몬스키」(가문이 들어간 일본예복)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됐다. 몬스키란 뭘까. 잘 모르겠다. 『엄마, 우리집에도 몬스키 있어. 다른 애들 부모는 모두 몬스키를 입는다는데. 』 『아 그거,걱정 안해도돼. 』 어머니 말에 안심했다.

디어 졸업식날이 왔다. 나는 감청색 교복에 하얀 넥타이차림이었다. 학생들은 식이 시작되기 전 식장에 들어가기때문에 어머니보다 먼저 학교에 갔다. 상장받는 학생들은 맨 앞줄에 앉았다. 손님과 학부모도 속속 들어왔다. 양복, 기모노 모두 검은 색이다. 어머니들도 검정색 기모노를 입고있었다. 여학생들도 모두 교복차림이다. 식장 전체가 검정이었다. 친구 어머니들이 입고있던 기모노를 유심히 봤다. 소매부분에 하얀 동그라미가 있었고 그안에 여러가지가 그려져있었다. 「아, 저게 몬스키구나. 」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자리에 앉았다. 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왜 안오시는 걸까. 」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머니는 그때 나타났다. 숨이 막혔다. 한복을 입고 계셨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검은 식장의 하얀 저고리는 눈에 띄었다. 얼굴이 뜨거워져 왔다. 목이 타들어 갔다. 아무리 침을 발라도 입술은 이내 말랐다. 어머니는 왜 저런 옷을 입으셨나. 식장뒤에서 속삭임들이 들렸다. 『조센징. 』

어머니는 고개를 세운 채 침착하게 계셨다. 부끄럽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졸업식은 끝났다. 나는 어머니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은 채 달려서 집에 왔다. 상장을 집어던지고 다리를 뻗은 채 엉엉 울었다. 뒤쫓듯 돌아오신 어머니의 가슴과 등을 마구 때리면서 울었다. 딸꾹질과 기침이 나왔다. 그렇게 운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힌 뒤 등을 어루만졌다.

『기마짱. 명심해 들어라. 우리가 조센징이라는 것은 기마짱도 알지않느냐. 일본사람은 가장 축복된 날에 몬스키를 입는다. 그게 제일 훌륭한 옷이기 때문이란다. 조센징에게 가장 훌륭한 옷은 이 치마저고리란다. 오늘은 기마짱이 상장을 받기때문에 엄마는 가장 예쁜 치마저고리를 입었단다. 조센징이 조선의 옷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다. 울지 말아라. 』

『조선옷은 조선에서 입으면 되잖아. 왜 일본에 와서 입는 거야. 그따위 옷, 좋은 옷이 아니야. 형편없어. 창피해. 』 나는 또다시 소리내 울었다. < 정리=이혁재 도쿄특파원 >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한국인이 쓴 글로는 처음 실리는 이상금 이화여대 명예교수(66·아동문학가)의 자전적 소설 「반쪽의 고향」< 조선일보 3월26일자 47면 >중 「치마저고리」부분을 독자들 요청에 따라 번역, 소개한다. 이 글은 「고아가 된 어머니」부분과 함께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쓰일 일본 중학교 2학년용 「신편 신국어」에 실린다.

「반쪽의 고향」에서 이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45년 귀국할 때까지 15년동안 일본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두 편은 모두 어머니 노옥분씨에 대한 감동적 얘기를 담고있다. 노씨는 딸 이름을 한국이름으로 불러달라며 호적등본을 갖고 학교에 찾아가 성사시킬만큼 강한 민족혼을 딸에게 불어넣어줬다. 노씨는 부산에서 상업을 하다 6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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