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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4대 총선거의 후보 마감날인 10일 이학봉 박재규 두 의원에 대해 징역 1년6월(집행유예 3년)과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함으로써 피선거권을 상실케 했다. 대법원은 얼마전에도 수서사건으로 계류중이던 이원배 이태섭 김동주 오용운의원 등 4명에게 서두르는 인상 속에서 유죄판결을 함으로써 피선거권을 상실케 한바 있다.

지난번 수서판결 때도 강조한 바 있지만,대법원이 어떤 사안에 대해 유-무죄 판결을 하건 그 구체적 판결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법부의 독자적 양심과 권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기회에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판결의 시점이다. 수서사건도 총선이라는 정치행사가 목전에 온 시점을 잡아 속결하듯 처리함으로써 해당인사들의 출마가 봉쇄됐다. 더욱 이번 이학봉씨 등의 선고는 후보마감일인 10일에 꼭 했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10일 오후에 선고를 함으로써 이씨는 부인이 대리 출마를 위해 부부 동시등록을 하는 등 별난 화제와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대법원의 상고심은 대략 2주 단위로 하여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순서에 따라 열리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의 관례적인 것일 뿐이지 움직일 수 없는 철칙은 아니다. 당길 수도,늦출 수도 있다.

그러기에 총선후보등록 마감일인 10일에 이씨 등의 상고심 판결을 함으로써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출마예정 정치인의 피선거권 유무를 결정짓는 것은 사법부의 성숙된 자세라할 수 없다. 총선일 공고가 지난 7일에 있었고 상고심 일자는 그 이전에 결정지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총선일이 24일로 예정되었다는 보도는 훨씬 전부터 있어왔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출마하려던 지역인 김해에는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내 6공 실세의 한사람으로 알려진 김영일씨가 출마하고 있어 대법원판결 시점의 오해를 벗어나기가 더욱 궁색스럽다. 전두환 전 대통령 밑에서 민정수석으로 5공의 실세였던 이씨가 6공 실세에 밀려 그의 부인 대리 출마라는 비상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설수를 대법원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씨는 청와대 근무시의 이권개입,친인척 비리조장 등으로 89년에 구속되었다. 그러나 같은해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때 후보 매수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었으며 김영삼씨의 직계인 서석재씨 재판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중에 있다. 그래서 서씨는 출마를 하고 있다. 이씨 혐의는 직권 남용이었던데 비해 서씨는 선거법 위반혐의다. 선거법위반 사건은 10만원 이상의 벌금형만 받아도 피선거권이 상실된다는 점에서 출마여부에는 훨씬 민감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판결의 시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법부의 순수성을 믿는다. 그렇다해도 이번 상고심 판결의 시점과 다른 계류 사건과의 균형문제 등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신뢰가 훼손됨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