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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달 구순이 넘은 외할머니 집에 청소를 하러 간다. 운전을 못하는 엄마가 경남 거창의 할머니 집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부터 시내버스, 고속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홀로 생활하기 어려워진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부터 엄마는 왕복 10시간을 달려 빈집을 정리하러 간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부터 쓰지 않는 그릇, 낡아 해진 옷과 신발…. 할머니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짐이 산더미라며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싱크대 아래 수납장 정리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단다. 엄마의 하소연은 꼭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너 생각해서 있던 짐도 버리고 있잖아."

엄마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부모님의 집 정리'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고령의 엄마와 집을 함께 정리하는 딸, 물건에 손도 못 대게 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자녀, 5년에 걸쳐 부모가 살던 집을 정리하는 자매 등 15명의 사연을 담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고독사나 간병뿐 아니라 물건이 잔뜩 쌓인 노인의 집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근마켓'과 비슷한 일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요즘 고령자 대상의 온라인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유행 이후 집 정리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 지난달 말 뉴욕타임스(NYT)는 집안 살림을 처분하기 위해 정리 전문가를 찾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시의 한 정리 업체는 지난해 사업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고 한다. 정리 전문가 매트 팩스턴은 "코로나 취약 계층인 노년층은 지난 2년간 가장 고립된 집단이었다"면서 "혼자 집에 머물면서 잔뜩 사들인 물건을 쳐다보니 집을 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이제 죽음은 고령층만의 관심사도 아니다. 지난해 국내에는 죽음과 관련된 책이 수십권이 출간됐고, 주 독자층은 30~40대였다. 얼마 전에 한 친구는 백신 접종을 받기 전에 "혹시 몰라 한번 써봤다"며 카카오톡으로 자신의 유서를 보내왔다. '명예를 지키고 싶으니 휴대전화는 열지 말고 버려달라' '매년 기일이나 생일에 떡볶이와 삼겹살, 생크림 케이크를 차려 달라' 등의 내용이었다. 각자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고르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코로나로 인해 누구나 죽음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코로나부터 전쟁까지 요즘 우리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수없이 목도하고 있다. 삶을 정리할 여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일지 모르겠다. 지난 6일 피란길에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숨진 우크라이나 일가족의 사진은 전 세계를 분노와 슬픔에 빠뜨렸다. 박격포 공격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한 어머니와 아들, 딸의 시신 옆에는 그들이 끌고 온 캐리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남겨진 캐리어는 살아남기 위한 식량과 최소한의 옷가지, 어쩌면 어린 딸이 애지중지하는 인형 하나쯤은 챙겼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가족이 손에 꼭 쥐고 있었을 그 캐리어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그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한다. 기고자 : 백수진 국제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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