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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건물 무너져 아동 17명 깔려
＂신생아 3000명 위기 상황에 직면＂

우크라이나 남부 아조우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마리우폴이 10여 일에 걸친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에 초토화되고 있다. 인구 43만 도시를 강타한 포격과 공습으로 1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졌다.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와 신생아, 산모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외신들은 "전쟁 발발 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시 당국과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어린이 병원과 대형 산부인과 병동이 파괴됐다. 병원 건물이 무너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어린이 17명이 잔해에 깔렸다. 정확한 사상자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3000명이 넘는 신생아가 의약품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대포와 전투기, 미사일, 다연장 로켓 등 온갖 무기로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소 1170여 명의 민간인이 숨졌다"며 "파괴된 주택에서 수습하지 못한 시신까지 합하면 사망자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AP통신은 "시신을 도시 중심부에 집단 매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25m 정도로 구덩이를 길게 파서 30~40구를 한꺼번에 묻는다는 것이다.

마리우폴은 일주일 넘게 수도와 전기가 끊기면서 도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한 의사는 AFP통신에 "마실 물이 없어, 빗물과 눈 녹인 물을 모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러시아군이 사회 기반 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며 "(시민의) 고통을 극대화해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고사(枯死) 작전'을 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시가전 대신, 도시를 포위하고 포격과 공습을 계속해 항복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마리우폴을 함락하면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친러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를 잇는 육상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극악무도한 테러를 지켜만 보는 것은 공범 행위"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하루빨리 우크라이나 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 러시아군을 막아달라는 요청으로 해석됐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의 비극을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한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포위된 도시에서 민간인이 대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마리우폴 시민을 러시아 측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9일 터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외무장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24시간 휴전을 제안했지만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다음 협상은 벨라루스에서 개최될 전망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회담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끔찍한 전쟁은 러시아 어머니들만이 바꿀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가 은폐한 사상자 실태를 알리고, 포로와 실종 군인 행방을 찾아온 '병사의 어머니 위원회' 스베틀라나 골룹 대표는 "우크라이나 어머니들과 손잡고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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