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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설' 베켄바워 영면

1972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 1972)을 앞두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TV 중계를 보다가 인테르 밀란 왼쪽 수비수 자친토 파케티(1942~2006)에게 매료됐다. 수비수이면서 수시로 공격에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베켄바워는 유로 1972 내내 서독 대표팀 스위퍼(최종 수비수)로 있으면서 후방에서 공을 걷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공을 몰고 나가 정확한 패스로 공격 활로를 뚫었다. 이른바 '리베로(이탈리아어로 자유롭다는 뜻)'라는 전술을 세계적으로 알린 순간이었다.

베켄바워는 유로 1972와 1974년 서독 월드컵을 연이어 석권하면서 세계 축구계에서 '카이저(Kaiser·독일어로 황제)'로 통했다. 1974 월드컵 결승에선 요한 크루이프(1947~2016)를 앞세운 '토털 사커(포지션 경계를 무너뜨린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축구)' 네덜란드를 2대1로 꺾었다. 서독이 우승했는데 대회 최우수선수로 크루이프가 뽑히자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란 말도 남겼다.

독일 축구 황금기를 구축했던 베켄바워(79)가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지난 7일 베켄바워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9일(한국 시각) 전했다.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69) 전 바이에른 뮌헨 회장은 "장례식을 뮌헨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하려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켄바워는 1945년 독일 뮌헨 근교에서 우체국 직원인 프란츠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4년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성해 뮌헨 소속으로 네 번 독일 분데스리가 정상을 밟았고,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 전신)에선 3연패(連覇) 위업도 이뤘다. 1977년엔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축구 황제 펠레(1940~2022)와 뉴욕 코스모스에서 함께 뛰었다. 말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뛰었고 몸담은 모든 클럽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3년 은퇴한 뒤엔 이듬해 39세 나이에 서독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을 깼다. 서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1대0 승리,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했다. 지난 5일 별세한 마리오 자갈루(브라질)와 베켄바워, 디디에 데샹(56) 현 프랑스 대표팀 감독까지 셋만이 가진 영광이다. 베켄바워 밑에서 1990 월드컵 선수로 뛰었던 위르겐 클린스만(60) 한국 대표팀 감독은 이날 "베켄바워 감독은 내게 월드컵 우승이란 꿈을 이루게 해주고, 인간적으로도 나를 성장시켜 준 중요한 분"이라고 추모했다.

축구 행정가이자 경영자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98년 독일축구협회 부회장에 취임해 2006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는 데 앞장섰고, 대회 조직위원장까지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는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지냈다. 이 기간 뮌헨은 200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서는 등 많은 트로피를 따냈고, 흑자 경영을 이어갔다.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는 "베켄바워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영플레이어상을 받을 때부터 2006년 조직위원장으로 독일 월드컵을 책임질 때까지 40년간 독일 축구에서 아우라(aura)를 내뿜었던 위대한 인물"이라고 조명했다.

[그래픽]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가 걸어온 길 기고자 :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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