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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 온라인보다 강력한 수단

요즘 서점 매대는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한다. 발언의 주인공은 정치적 사건에 휩쓸린 일반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2021년 고발한 공익제보자 A씨는 작년 11월 그 전말을 담은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천년의상상)를 냈다. 처음으로 '조명현'이란 이름을 드러내며 쓴 책에서 그는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먹은 건 정말이지 큰 산 하나를 넘는 것이었다"고 썼다. 경기도청 7급 공무원직을 관둔 뒤 야간 택배로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2년의 시간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피해자로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책은 3쇄·1만2000부를 찍었고, 출간 직후 교보문고 정치 사회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주목받는 정치사회 분야 책들은 이처럼 정치적 사건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 경우가 많다. 대통령·유력 정치인 등 소수만이 관련 경험을 책으로 냈던 과거와 달리, 저자 면면이 다양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였던 문상철씨는 작년 11월 정치인 안희정의 성장, 그리고 성폭행 등 추락을 담은 책 '몰락의 시간'(메디치미디어)을 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 김잔디(가명)씨가 사건의 전말에 대해 쓴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천년의상상), 올해 조국 전 민정수석의 보좌관이었던 황현선씨가 출간 예정인 '조국 그리고 민정수석실'(메디치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훼손된 명예 되돌리기 위해 쓴다"

수많은 매체로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왜 책인가.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매체가 범람하지만, 자기 서사를 구축하는 매체로서 책의 힘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책의 물성은 일회성이 강한 온라인 공간과 달리 지속적이며, 분량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 인터뷰 등엔 분량상 담을 수 없는 이야기도 책에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과거엔 출마 예정자나 이름 있는 정치인이 책을 내 왔지만, 지금은 직위 등에 상관없이 이슈 메이킹을 할 수 있는 정치 관련 콘텐츠를 가진 이들이 책을 내는 일이 늘어났다"며 "책이 다른 매체와 달리 길이·분량·깊이 측면에서 지속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했다.

많은 독자는 정치적 사건을 담은 책을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로 읽는다. 각자의 이유로 고통받던 시간 동안 수없이 고민을 거듭하며 써내려간 글인 만큼, 누구나 공감할 법한 내용이 많다. 독자들은 책에 "응원한다"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등 반응을 보인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낸 출판사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는 "사건의 당사자분들은 공통적으로 메모를 참 많이 한다.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글로 적는다"며 "이름을 걸고 책을 내는 행위가 자신을 사회에 한복판에 던지는 일이지만, 자신의 훼손된 명예와 삶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출간을 희망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제도 아닌, 삶으로서 정치에 주목"

출간 목적은 다양하다. 정치 주변부의 인물이 과거 사건을 이야기하는 '폭로', 정치적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하는 '변명', 그리고 총선 등 이루고자 하는 바를 알리는 '홍보'로 분류할 수 있다. 폭로 계열의 책은 2020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성폭력으로 고발한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봄알람)를 시작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변명 계열로 작년 하반기 조국·조민·정경심씨가 잇따라 에세이를 출간해, 가족이 서점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엔 한국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김예지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속 수행 사진가였던 장철영씨,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이 책을 냈다.

정치 관련 책이 다수 출간되는 현상은 정치에 대한 권위주의적 접근이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국회 등 제도권 수준의 정치를 넘어, 많은 이가 각자의 시선에서 경험하는 '삶'으로서의 정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메디치미디어는 이달 말 '몰락의 시간' 등 정치 관련 책을 출간한 저자들을 모아 '정치학교'란 강의를 연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겪은 정치를 이야기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정치적 위상이 무명에 가까운 이들도 책을 출간하는 현상은 권력이 없더라도 권력자에게 비판을 제기하는 '탈권위주의'의 심화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 최근 출간된 폭로 계열 책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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