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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가족추억 깃든 곳＂ 서운

9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의 '장안온천'. 2003년 문을 연 이 일대 대표적인 목욕탕 중 하나였던 이곳 입구엔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경영 악화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만 붙어있었다. 지난 2일은 장안온천의 마지막 영업 날이었다. 서울에서 드물게 유황온천이 나온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하지만 2년간 이어진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황은 피하지 못했다. 문 닫던 날 이곳을 찾은 손님은 30여 명이었다.

1300㎡(약 400평) 규모로 목욕탕과 찜질방까지 있던 이곳은 전기·수도·가스비 등 고정 운영비만 월평균 4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급격히 손님이 준 건 작년 3월 무렵이었다. 경남 진주의 한 목욕탕에서 2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온 게 알려졌을 때였다. 운영이 어려워져 작년 여름에는 한 달간 휴업도 했다. "폐업하겠다"는 사장을 직원 8명이 "우리가 월급을 반만 받을 테니 이 고비만 넘겨보자"며 말려 작년 말까지 버텨왔다고 한다.

작년 11월 정부가 목욕탕에 도입한 방역 패스(백신 접종 및 음성 확인서) 정책은 직격탄이 됐다. 단골들이 대부분 고령층인데 "방역 패스가 뭐냐"고 말하는 사람이 태반이라, 연세 든 손님들을 매일 50명씩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목욕탕에서만 18년 일했다는 한 직원(68)은 "주민등록증 있는 손님은 직원들이 직접 주민센터에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한 뒤 들여보냈다"며 "그렇게까지 했지만 더 못 버티고 새해 벽두에 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영업 마지막 날 직원 8명이 목욕탕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2년, 전국 곳곳에서 수십년간 사랑방 역할을 해온 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정부 공공 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2019년 전국 6976곳이었던 목욕탕 수는 작년 말 6269곳으로 줄었다. 특히 코로나 확산세가 심했던 서울에서는 이 기간 목욕탕이 940곳에서 768곳으로 줄었다. 약 18%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서울에선 서대문구 홍제동 마을탕, 강북구 미아동 대광탕, 성동구 금호동 서중탕 등 50년 넘은 동네 목욕탕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김수철 한국목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목욕탕은 아예 철거할 경우 그 비용만 1억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폐업 신고도 못 하고 문 닫은 곳도 많다"면서 "지금 서울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곳은 500곳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작년 말에는 서울 홍제동에서만 50년 영업한 '마을탕' 앞에 있던 빛바랜 '목욕합니다' 팻말이 치워졌다. 1971년 문을 열어 3대에 걸쳐 운영해오던 곳이다. 단골이었다는 주민 김성만(82)씨는 "자식들 데려가 때 밀어주고 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곳인데 사라져 아쉽다"고 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도 52년 된 대광탕이 지난달 23일 폐업 신고를 했다. 1980년대 초반 이곳을 인수해 약 40년을 운영한 김모(77)씨는 "남편과 함께 애들 키워낸 인생 같은 목욕탕이라 폐업할 때 참 섭섭했다"고 했다.

아직 운영 중인 서울의 목욕탕도 사정은 비슷하다. 25년째 잠실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용호(67)씨는 "직원 다 내보내고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아내와 둘이 교대로 카운터 보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데, 코로나 2년 동안 빚만 1억원 쌓였다"고 했다. 1963년 문 열어 햇수로 60년 된 성북구 삼선동 '삼영탕' 관계자도 "코로나가 아예 목욕 문화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위기 의식이 업주들 사이에서 퍼져 있다"고 했다. 기고자 : 이해인 기자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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