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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모두 '신사와 아가씨'를 보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을 처음 알게 된 건 설 연휴 고향 집에 내려갔을 때다. 어머니는 저녁 8시가 되면 KBS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를 봐야 한다고 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21세기적 변용 같은 제목을 듣고도 별생각은 없었다. 지상파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지나치게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본 건 2021년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었을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본 건 오로지 윤여정의 연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향해서도 '신사와 아가씨'를 보진 않았다. 지상파 드라마는 더는 잘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 종편이 좋은 창작자들을 끌어들여 한국 영화 웰메이드 시대를 드라마로 연장시켰다. 국제적 자본과 플랫폼을 가진 OTT(동영상 서비스)가 가세해 드라마를 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버렸다. 새로운 세대는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고 벌써 여덟 시네"라며 젖은 손을 닦고 TV 앞에 앉지 않는다.

'신사와 아가씨'를 보기로 결심한 건 '자체 최고 시청률 37.2%'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2022년의 시청률 37.2%는 1996년 '첫사랑'의 65.8%에 맞먹는 숫자다. 역사를 목격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본 '신사와 아가씨'는 놀라웠다. 불륜과 기억상실증과 유전자 검사가 마구 나왔다. 배우들은 속고 속이려 악을 썼다. 지나치게 전개가 빠른 드라마를 헉헉대며 보고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자 거기도 전개가 지나치게 빨랐다. 투표일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여러 지표를 건설적 방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후보가 당연히 이길 거라 소리치고 있었다.

난무하는 정치적 게시물 사이에서 가장 많은 비정치적 게시물은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 대한 호평이었다. 나도 '소년심판'이 정말 좋다. 한국 드라마의 멋진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곧 생각했다. 내 소셜미디어 친구들은 모두 '소년심판'을 보고 있지만 세상은 '신사와 아가씨'를 더 많이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소셜미디어를 빠져나왔다. 그러고 '신사와 아가씨'를 보는 사람들의 투표 성향은 어떨지에 대해서 방구석 여포처럼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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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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