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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에게 영국 왕실은 공포였을까

왕비가 될 수도 있었던 자리에서 물러난 뒤 비극적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여인.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다이애나(1961~1997) 왕세자빈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언제나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2013년 영화 '다이애나'부터 영국 왕실의 역사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까지 모두 그랬다.

16일 개봉하는 '스펜서'(감독 파블로 라라인)는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별거를 결심하기 직전인 1991년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이애나는 남편 찰스(잭 파딩) 왕세자의 외도와 영국 왕실의 침묵 속에서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급기야 다이애나는 헨리 8세에게 버림받은 뒤 목숨까지 잃은 '천일의 앤' 앤 불린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 다이애나의 고통을 드러내는 장치가 근접 촬영과 음악이다. 다이애나가 내면적 불안에 시달릴 적마다 카메라는 어김없이 피사체에 바짝 다가가 그 슬픔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영한다. 영국 전설적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 음악을 맡았다. 영화에서 바로크풍 음악은 변화를 거부하는 왕실의 완고함을 상징하고, 다이애나의 흔들리는 내면은 프리 재즈와 현대음악의 조합으로 표현한다.

칠레 출신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칠레 시인 네루다를 그린 '네루다'와 재클린 케네디를 다룬 '재키'까지 실존 인물의 삶에 바탕을 둔 영화를 즐겨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연출은 전통적 전기 영화의 작법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이번에도 풍부한 음악과 절제된 대사의 대비를 통해서 고도의 심리극으로 탈바꿈시킨다. 심지어 남편 찰스 왕세자와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스텔라 고넷)도 대사는 물론, 출연 분량마저 적은 편이다. 반대로 영화 초반에 환영처럼 어른거리던 앤 불린이 실제 인물처럼 다이애나와 대화를 나누는 후반 장면에서는 심리 스릴러와 공포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반적 전기 영화를 기대했다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영화적 실험은 다이애나 역의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31)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뱀파이어와 로맨스 장르를 결합한 영화 '트와일라잇'을 통해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스타덤에 올랐다. 1인극에 가까운 이번 영화를 통해서 그는 이전 청춘 스타 이미지를 깨끗하게 지워 버린다. 이달 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니콜 키드먼, 페넬로페 크루스, 올리비아 콜먼 등 경쟁자들의 면면이 화려하지만, 갓 서른을 넘은 그도 강력한 복병임에 틀림없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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