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연기하는 배우 신구·오영수

배우 신구(86)·오영수(78)는 6·25 전쟁을 겪었다. 요즘엔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연극 '라스트 세션'(연출 오경택)을 공연 중이다. 영국이 독일에 맞서 참전을 결정한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 박사의 서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신구는 "뉴스를 볼 때마다 6·25가 연상된다.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고, 오영수는 "푸틴은 이 연극에 나오는 히틀러처럼 정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유신론자 C S 루이스의 논쟁을 담은 '라스트 세션'은 올해 대학로 최고 흥행작이다. 오영수가 골든글로브 연기상(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받자 객석이 초고속으로 매진됐다. 오는 20일까지 공연이 2주 연장됐다. "진지한 연극을 향한 갈증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날마다 만석(滿席)을 보며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프로이트 박사로 출연하는 두 배우를 지난 3일 극장에서 만났다.

◇그 국민성에 놀랐다

오영수(오)=어느 나라 지도자와 국민은 전쟁 나면 도망가기 바빴잖아요. 우크라이나는 거꾸로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들어옵니다. 그 국민성에 놀랐어요.

신구(신)=배우 출신인 대통령이 결사항전 중이잖아요. 수도를 빠져나갈 핑계를 대자면 수십 가지일 텐데 참 대단해요. 6·25 때 경기고 1학년이었는데 피란을 두 번 갔어요. 1·4 후퇴 땐 중공군이 벌써 길을 막고 있더라고요.

오=파주에서 6·25를 맞자마자 인민군한테 아버지를 잃었어요. 한강을 건너다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 떠내려가다 소 꼬랑지를 붙잡고 겨우 살았지요(웃음).

신=2차 대전과 6·25,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요. 이 전쟁도 확전이 안 되리라는 법은 없어요. 프로이트가 살아 있다면 동조자들을 규합해 푸틴을 응징할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오=신의 존재를 더 철저히 부정하지 않았을까요? 신이 실재한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데 구경만 하진 않겠죠.

신=까딱하면 우리도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에요. 북한·중국·러시아가 옆에 있잖아요. 다행히 거의 모든 나라가 우크라이나를 도우며 연대하고 있어요. (오영수가 호응하며) 저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 강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고립되면 전쟁을 오래 끌고 갈 수 없어요.

◇'라스트 세션' 배우의 전쟁

오=우리 연극과도 동떨어진 게 아녜요. 우크라이나도 잠깐 등장합니다. 안타깝지만 나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어요.

신='삶이 곧 전쟁'인 코로나 시대에 진짜 전쟁이 벌어졌지요. 그럼에도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묻는 이 연극을 보러 오는 구름 관객이 너무 고마워요.

오=저는 '오징어 게임'으로 갑자기 부각되는 바람에 중심이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웠어요. 신구 선배님 따라 참여한 작품인데 '강적을 만났구나' 싶어 긴장했습니다. 개막하고 며칠은 관객에게 미안할 정도로. 연기도 전쟁이라 체중이 3㎏ 빠졌어요. (신구가 조언해줬는지 묻자) 전혀요!

신=아니, '월드 스타'한테 내가 무슨 조언을 해? 하하.

오='연극이 뭔지도 모르고 왔는데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앞으로 연극을 보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다'는 후기를 읽었어요. '내가 하길 잘했구나' 뿌듯했습니다.

신구는 완고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프로이트이고 오영수는 날카롭고 여유가 있다. 신구의 공연이 오영수의 공연보다 10분쯤 일찍 끝난다. 대사를 치는 속도, 포즈(멈춤)의 길이가 달라서다. 스스로 만족한 회차는 얼마나 될까. 골든글로브 수상 배우가 먼저 "사나흘밖에 안 된다"며 겸연쩍어하자 '깐부' 형님이 빙긋이 웃었다. "나는 딱 하루야." 기고자 : 박돈규 기자
본문자수 : 186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